학습이란 무엇인가? - 번외편 문과와 이과
필자가 처음으로 문과와 이과가 서로 싸우는걸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졸업 때였습니다. 고2 때부터 문과 이과를 정해서 진급해야 하는데, 이과와 문과가 이제부터는 서로 등수를 따로 메기기에 어느 쪽에 잘하는 학생이 더 쏠리냐에 따라 당장 내신 난이도가 확 달라졌기 때문이죠.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이과에 심한 쏠림이 나타났었습니다.
오르비에서도 이과와 문과 나누고 어디가 대학 가기 더 쉽다느니, 어느 쪽은 덜 공부하고도 꿀빤다니로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것말고도 문과 학생들이 취업 문제로 이과나 공학 수업을 대학교에서 듣는다는 뉴스 댓글에서도, 이과와 문과가 서로 나눠져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도 문과와 이과로 갈리는 것에 대해서 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모습이 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수학은 정말 지지리도 못했지만 과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갔었고, 백일장이나 문학동아리 한 이력 덕에 문과에 대해서도 많은 경험을 했었습니다.
(문과와 이과가 서로 싸우는 것은 진지하게 서로 헐뜯는 때도 있고, 또 하나의 인터넷 밈으로도 다양한 유머로서 활용됩니다. 꽤 재밋더군요)
저는 수험생활동안 학습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정리하면서, 이과와 문과 학문의 서로 다른 특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근본적으로 둘이 왜 싸우는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과와 문과의 차이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둘을 갈라놓고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학문의 특성의 차이점을 이해하면서 학습에 대해 더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문과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제가 나름 문과를 최대한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자유로움'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예컨데 저처럼 글을 쓰는 일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수없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저처럼 학습에 관련된 칼럼을 쓸 수도 있고, 자기반성적인 일기를 쓰거나, 혹은 시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유롭다'라고 했듯이, 이러한 글들은 뭔가 점수를 메기거나 일렬로 줄세우기가 매우 힘듭니다. 과연 뭐가 좋은 글일까요? 단순히 쓰는데 오랜 시간이 든 글이 좋은 글일까요? 누군가는 저보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어서 깊이있는 내용을 더 짧고 빠르게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럼 또 그런 깊이를 어떻게 측정할까요?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자기 개성에 따라, 경험과 지식 수준에 맞춰 알아서 쓸 수가 있습니다.
(저도 다양한 주제와 일화로 글을 쓰다보니까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고, 비슷한 수준의 노력을 들여서 비슷한 결과를 뽑아내기가 참 힘듭니다. 글이라는게 무슨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찍는게 아니라서요
https://www.lovetips.co/if-you-want-to-dream-a-writer-or-improve-your-writing-skills-pay-attention/ )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문과 관련 직업이나 학문들은 수치로 정리하기 힘들고, 이과는 딱딱 다 맞아 떨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이과나 문과에서도 서로 상대방에 비슷한 특성을 가진 분야들도 많습니다.
다만 제가 여태 경험하거나 들은 학문이나 직업들을 보면 이과는 문과에 비해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수치로 계량화해서 등수를 메기거나, 눈에 보이게 표시하기 쉽습니다.
예컨데 교육과정만 봐도 이과, 공과 학문들은 다소 공통적인 부분을 배워야 합니다. 많은 공대 학과들은 1학년때 물리, 수학, 화학 등을 배우길 권장하며 필수적으로 기초물리학 정도는 띄우고 진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학, 물리적 도구는 훗날 공학적 이해와 계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도구로 기초가 됩니다.
이렇게 공대는 기본적인 공학적 도구를 1학년때부터 필수적으로 떼워야 하는데, 이에 반해 문과 학과들은 교육과정이 대단히 자유로운 편입니다. 문과 학생들이 이과로 전과한다면 이과가 1학년때 배우는 기초 물리, 수학을 다 떼야하죠. 반면 이과 학생들은 문과로 전과해도 문과 학생들보다 글쓰기 능력이 떨어진다 해서 특별히 문과 1학년이 듣는 수업을 다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이과는 문과로 전과가 자유로운데, 문과는 이과로의 전과가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말이 나오는거 같습니다.
문과 학생의 학문적 깊이와 이해도는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데 철학과 학생이 있다면, 이 학생의 학문에 대한 이해도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냐?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그 정도를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좀 오래 대화를 해봐야지 대충 생각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죠.
근데 이과 학생은 학문적 수준을 그나마 측정하기 쉽습니다. 그냥 수학문제 던져주고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보면 됩니다. 어떤 공학 지식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문제 푸는거 잘 푸는지만 보면 됩니다. 단순히 성적으로 산출해서 줄 세우기가 참 편한거죠.
이러한 학문의 특성은 교육 방법에도 당연히 영향을 줍니다. 이과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그냥 시험 커트라인을 딱 정해놓고, 이것만 넘으면 일단 넌 어느정도 공학적 이해가 되었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근데 문과 학생은 생각의 깊이가 아무리 깊고 지식을 많이 알더라도 표현 능력이 부족하면 측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거죠.
(만약 학생들의 실력 분포를 정규곡선으로 나타낸다면, 그림처럼 이쁘고 아주 전형적으로 실력이 측정될 것 같습니다. 최소 이과라면 어느정도 기본적인 수학 물리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에, 그 최소 점을 기준으로 평균에 많이 쏠려있을거 같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o9364&logNo=220726151741&parentCategoryNo=&categoryNo=12&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search )
이러한 특성 덕에 사람들을 보면 뭔가 이과들은 다 수준이 그렇게 심하게 차이 안나고, 다들 비슷한 풀이 과정을 가지고 비슷한 결과를 내는데 문과는 정말 널뛰기가 심합니다. 정말 열심히하고 많이 알고 찾아보는 문과 선생님들은 학문적으로 아주 깊이있는 수준을 보여주더군요.
하지만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문과의 개성이 강하고 실력 차이가 크다는 것은 또한 편의상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 뿐이지,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할때마다 다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컨데 제가 하듯이 글쓰기 능력을 보면 당장 돈은 안되고 중요도는 떨어질 수도 있으나, 또 나중에 중요하게 쓰일 수도 있겠죠.
신기하게도 전 과거 재수 학원에서 문과 선생님들이랑 더 친했습니다. 그 분들은 국어나 영어를 가르치셨는데, 이과인 제가 나름 정리한 과학적 학습에 대해서 이야길 하니까 다들 알아 들으시더군요.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그 분들은 문과에서도 정말 뛰어난 편에 속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마 상위 1%만 뽑아서 비교해보면, 오히려 문과가 더 학문에 대한 깊이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이건 저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니까 패스.
제가 문과와 이과를 넘나들며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또 문과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이과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관찰하고 비교하다보니 두 학문의 특성 차이도 잘 보이고, 좀 세상이 더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설명한 내용 말고도 정말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원래는 아예 문이과를 구별하고 그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서 고찰한 시리즈를 따로 연재하려고 했을 정도로 쉽게 제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충 제가 말한 것들을 많이 경험해본 사람들은 벌써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했으리라 봅니다.
제가 설명한 이 내용들은 심지어 게임회사 직업군에도 적용이 되더군요. 문과적 성향이 아주 강한 기획자 파트는 서로간의 실력과 업무량을 측정하기 어렵고 또 아주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과적 성향이 강한 프로그래머 직군은 업무량과 실력이 아주 쉽게 표시됩니다.
게임회사 직업군에 대해 설명했던 유튜브 채널에서 게임 개발자에 대해서 설명한 영상을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MeiDrU5w
앞으로는 문이과 구분이 교육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철폐되면서 다시 크게 화자될 일은 없겠지만,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관찰하는 것은 학습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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