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샘] 2018 여태껏 우리가 몰랐던 비문학 이야기_7. 신채호와 토인비
여러분은 언제 나를 찾는가?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나를 찾는 일에 자주 노출되곤 한다. 예를 들어, 윤동주 시 해석의 시작은 나부터다. 차라리 거울이나 우물 정도 비춰주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때론 무턱대고 나를 들이내밀 때도 있다. 정약용의 수필 중에 ‘수오재기’란 작품이 있다. 나를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다룬 글이다. 얼핏 보면 뭐 딱히 이해하기에 어려울 내용도 없다. 그런데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꽤나 황당하기까지 하다. 나만큼 잘 도망치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더 난해하다. 꽁꽁 묶은 뒤 자물쇠로 나가지 못하는 방에 가둬두란다.
역사가 신채호 역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로 들여다 본 역사의 궤적은 결국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란 종착역으로 인도하였다. ‘아와 아의 투쟁’에 내몰린 현실의 학생들에게 있어 ‘비아’에 대한 자각은 날개의 주인공 나가 깨닫게 되는 ‘정오의 사이렌’에 버금가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수능 국어 역사에서 신채호의 아는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지문으로 손꼽힌다.
<예1>
식민 지배가 심화될수록 일본에 동화되는 세력이 증가하면서 신채호는 아 개념을 더욱 명료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그는 조선 민중을 아의 중심에 놓으면서, 아에도 일본에 동화된 ‘아 속의 비아’가 있고, 일본이라는 비아에도 아와 연대할 수 있는 ‘비아 속의 아’가 있음을 밝혔다. 민중은 비아에 동화된 자들을 제외한 조선 민족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 민중을, 민족 내부의 압제와 위선을 제거함으로써 참된 민족 생존과 번영을 달성할 수 있는 주체이자 제국주의 국가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중과의 연대를 통하여 부당한 폭력과 억압을 강제하는 제국주의에 함께 저항할 수 있는 주체로 보았다. 이러한 민중 연대를 통해 ‘인류로서 인류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를 지향했다. |
<예1>은 2015년 수능 B형에 나온 지문이다. 한때 노랫말 중에 ‘네 거인 듯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의 ‘꽃’을 상기해 보자.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실제 이 지문에서 가장 사랑받은 대목도 ‘아 속의 비아’와 ‘비아 속의 아’였다. 오죽하면 많은 수험생 학부모들도 이 지문을 읽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신채호는 아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개인적 아와 사회적 아이다. 둘의 공통점은 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성은 항성과 변성의 화합물이다. 차이점은 개인적 아는 자성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소아라고 부른다. 반면 사회적 혹은 국가적 아인 대아는 자성은 물론 상속성과 보편성을 가진다. 즉 대아는 역사를 인식하는 자아를 말한다.
<예2>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를 펴내며 역사 연구의 기본 단위를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 설정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영국이 대륙과 떨어져 있을지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으므로, 영국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유럽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문명 중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가설들을 세웠다. 그리고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그 가설들을 검증하여 문명의 발생과 성장 그리고 쇠퇴 요인들을 규명하려 하였다. |
<예2>는 2014년 수능 A형에 나온 ‘토인비의 가설’이란 지문이다. 답이 잘 나오지 않는 나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채호와 토인비는 인식의 설정에 차이가 있다. 신채호가 나라면 토인비는 문명이다. 신채호가 무에서 유로 가기 위한 길을 닦는 여정을 머릿속에 그렸다면 토인비는 유에서 더 나은 유를 찾는 여로를 더듬는 느낌이다. 토인비의 가설을 지탱하는 두 기둥 중의 하나가 ‘도전과 응전’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 던져져 있다. 도전은 곧 역경이다. 이 지점, 즉 생존이라는 지상 명령 앞에선 동서양의 구분이 사라진다. 최적의 응전은 곧 신채호가 말한 투쟁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가로서 신채호와 토인비가 손을 잡고 제시하는 방향 또한 다르지 않다. 발전과 성장이 그것이다. 생존에 그치면 재미가 없다. 인간이란 그럴듯한 역사를 만들 타고난 능력과 엄청난 가능성의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연대를 강조한다. 올곧고 힘차게 뻗어갈 역사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허허벌판에서 나를 만들어 세웠던 그 아와 또 다른 아가 협력해야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결국 ‘아와 아의 믿음’이 우람한 나무를 상속적이고 보편적으로 키울 것임을 내다 본 것이다. ‘삼지창 위 1호’, 신채호의 아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유치환은 ‘생명의 서’란 작품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과감히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라고 말한다. 아무리 잘하는 학생도 병든 나무처럼 부대낄 때가 있다. 토인비의 두 번째 기둥은 ‘창조적 소수와 대중의 모방’이다. 인류의 성장과 문명의 운명은 마침내 나에 달려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벚꽃길이든, 진흙길이든 그래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있다. 필자는 여러분이 대아를 품은 창조적 소수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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