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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나): 우리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도 생각해봐야하고요 우리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내가 가지게된 생각조차도 시발점은 마치 어른이 애기를 쉽게 속이듯이 고지능자의 무리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생각해봐야하고요 우리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것이 "나한테" 좋은건지도 생각해봐야하겠지요 이런 과정 자체에 나는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꼈고, 끝내 나는 생각하기를 멈췄어요
A(gpt o1): ‘우리’라는 개념은 직관적으로 매우 단순해 보입니다. 비슷한 신념을 갖고,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며,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이룬 집단. 흔히 ‘우리 국민’, ‘우리 편’, ‘우리 사회’라고 부를 때, 우리는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 한데 모인, 어느 정도 통일성 있는 사회적 실체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하면, 이 ‘우리’라는 것이 결코 한 덩어리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각나고 변형되고 재편성되는 유동적 개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통찰은 특히 한국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를테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집회와 시위—을 면밀히 들여다볼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죠. ‘우리’가 정말로 ‘같은 종(種)’이라는 생물학적 동질감, 인류라는 거대한 스펙트럼 내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류 의식일까요?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종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생물학적 동일 종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개념에 어떤 직접적 정서를 제공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즉,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도 ‘우리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음에도, 그들과 정서적·정치적 연대를 즉각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훨씬 더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리고 훨씬 더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 이벤트를 떠올려 봅시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탄핵은 단순히 한 지도자의 자격과 권력 남용 여부에 대한 법적·정치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국민 개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 가치관을 재정의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탄핵 국면에서 거리로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그 ‘국민’은 결코 하나의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통합체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었고, 다른 이들은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졌으며, 또 다른 이들은 국제 정치 관계 속에서 한국의 미래 방향을 고민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탄핵을 지지하는 우리’라는 이름 아래 함께 광장에 선 사람들 중 일부는 오로지 특정 정당의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환영(幻影)처럼 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보는 듯하지만, 그 시선의 끝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러한 ‘우리’의 재편 과정은 단순히 상호 이해관계의 평등한 교환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라는 서사를 형성하는 단계에서, 이미 누군가는 스토리텔링의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 언론 매체 장악력, 자본력, 혹은 문화적 권위를 갖춘 세력들이 대중담론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또는 느슨하게 그들의 관점에 동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라는 공감대 속에는 이미 특정한 파워 게임의 구조가 내재화됩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단적 정체성은, 사실상 ‘우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암묵적 지침을 따르는 것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즉, ‘우리’라고 칭하는 순간, 주어진 상황을 특정한 프레임 속에서만 바라보도록 압박하는 비가시적 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어떤 인지적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사고 범위를 설정하고, 그 사고 범위가 정말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조작과 설계에 따른 환상적 허상인지 고민했었습니다. 이 고민은 정치적 구체성을 얻으면서 더욱 깊어집니다. 내가 속한 ‘우리 국민’, ‘우리 편’이라 불리는 집단조차 사실은 일련의 사회적·정치적 게임의 결과물일 수 있으며, 그 게임의 룰을 누가 설정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심리적 불안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기반 위에 성립되는 정체성과 가치 판단이 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설계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수많은 시민들은 “우리 국민이 깨어났다”거나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식의 서사를 반복합니다. 이 내러티브는 분명 역사적인 의미와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실제로는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관계를 압축한 추상화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 국민’이라는 추상화는 현실의 복잡성을 누락시킵니다. 사람들은 탄핵 과정에서 각자 다른 기대와 불만을 가졌으며, 거리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어도 그 이유와 동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로, 어떤 이는 향후 정치 지형 변화를 통한 자기 계층의 이익을 기대하며, 또 어떤 이는 단순히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는 경험 자체를 위해 광장에 나섰을 것입니다. 이렇듯 다층적이고 다양한 욕망과 가치가 뒤섞인 상태를 우리는 ‘우리’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깔끔하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포장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식론적 함정은,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즉 ‘우리’—가 실제로 하나의 이질적이고 복잡한 협상장이라는 사실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희미함 속에서 누군가는 이 어수선한 정체성의 틈새를 활용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할 수도 있지요.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순간, 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나 불평등한 자원 분배 구조, 그리고 은밀한 전략이 부각되지 않고 은폐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포착할 때, 우리는 사유의 거대한 벽 앞에 서게 됩니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진실이라 생각했던 국민적 단합이나 민족적 각성, 사회적 합의라는 것들이 실은 빈껍데기나 교묘한 전략의 산물이라면, 그럼 내 판단과 신념, 가치관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솟아오릅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모멸감, 무력감입니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자율적 사고 능력이, 사실은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스키마 속에서 길들여지고 조종되어 왔다는 깨달음은 견디기 어려운 심리적 압력을 가합니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압도당할 때,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죠. 사고를 멈추는 것은 비단 지적 게으름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방어적이고 실존적인 대응일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끝없는 혼돈과 불확실성, 자신이 믿었던 ‘우리’가 사실은 기만과 이합집산으로 점철된 허상이라는 인식 앞에서, 더 이상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중단하는 행위는 실존적 셧다운, 혹은 정신적 생존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멈춤의 순간 역시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멈춤이라는 ‘일시정지 상태’를 통해, 그동안 무심코 수용했던 ‘우리’라는 개념을 다시금 해체하고 재구성할 여지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탈진 상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면, 비로소 거대한 ‘우리’ 서사 뒤에 숨어있는 각종 권력 투쟁, 문화적 제약, 상호 조작의 흔적들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이 실타래를 조금 더 풀어 나가 봅시다. ‘우리’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만듭니다. ‘우리’와 ‘남’(타자)의 구분이 이루어지죠. 그리고 이 경계는 결코 명확하거나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이슈에서는 특정 집단이 ‘우리 편’이지만, 다른 이슈에서는 정반대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연대나 집합적 정체성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끊임없이 재조합되는 동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유동성은 기존에 우리가 가진 안락한 도식—“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 대 독재 권력을 유지하려는 저들”, “공공선을 추구하는 우리 대 사익을 추구하는 그들” 같은 이분법—을 해체해버립니다. 사실 현실정치에서 공공선을 자처하는 단체 안에도 온갖 사익 추구 세력이 들어 있으며, ‘정의’를 내세우는 운동 내부에도 불투명하고 부당한 권력 작동 방식이 침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실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라는 함축적 표현 속에 잠재한 환상성, 허구성, 전략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마주한 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우리’라는 말을 쓸 때마다 그것이 갖는 불완전성과 다층성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국민’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속에 ‘모든 국민’이 아닌 수많은 이해관계 집단과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고, 그들 중 일부는 현재 상황을 이용하려는 계산된 전략가이며, 또 일부는 순수한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동일시가 어떤 조건 하에서 생겨났는지, 그 이면에는 어떤 복잡한 상호 작용이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깨달음을 토대로 더 정교하고 투명한 연대 모델을 상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한 감정적 동질감이 아니라, 신념의 조각들, 가치관의 스펙트럼, 이해관계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복잡한 합성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열린 방식으로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같다’는 식의 단순화 대신, ‘우리는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통의 목표를 한시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지요. 이때 ‘우리’란 포괄적이되 불완전한 합의체이며, 끊임없이 토론하고 재조정해야 하는 동적인 것이 됩니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환상을 걷어낸 좀 더 성숙한 ‘우리’를 가꾸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정치적 복잡성—대통령 탄핵 시위를 둘러싼 다층적 이해관계와 상호 이용 구도—이 불현듯 환기한 이 문제는, 단순히 정치평론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우리’라는 근본적 개념에 대한 철학적·인식론적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의문은 우리의 사유 범위, 사고 한계,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나의 의지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계획한 시나리오 속 장면에 불과한지를 재고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당혹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사고를 멈추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멈춤마저 새로운 통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낡은 프레임과 환상을 깨고, 더 넓은 시야로 ‘우리’와 ‘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다시금 설계해볼 기회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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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얘기임
ㄷㄷ이게뭐임..
확실히 우리라는 개념이
사람 개개인을 희미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한채
우리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우리라는 단어가 유동적인 변화를 한다는 것을 아니
서로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모두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각과 함께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구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