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국어 독학서를 집필하는가
안녕하세요,
(전) 수능 국어 강사이자 (현) 수능 국어 교재 저자 조경민입니다.
요새 오르비 활동이 뜸했는데요,
오늘은 오랜만에 썰을 풀어보려 합니다. ㅎㅎ
제가 왜 독학서를 집필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1. 내가 독학서를 원했던 이유
저는 어렸을 때 책도 많이 읽었고,
초등학교까지는 나름 똑똑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중, 고등학교 내신이 몹시 낮았습니다.
공부를 안한 것도 아니었어요.
공부도 하고, 학원도 다녔는데 내신이 낮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낮았고,
모의고사 성적만 높았죠.
이유는 바로,
제가 남의 말을 잘 못 듣는 성격이라 그랬습니다.
어이 없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랬습니다.
책은 오랫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음성적인 자극은 조금만 주어져도 쉽게 피곤해지고, 집중이 안 됐어요.
그러니 내신이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신은 학교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필기하고, 잘 외우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학교 수업은 잠깐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하게 되어서,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수학이나 과학은, 혼자서 공부해도 내신을 어느 정도 잘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국어, 영어 내신은 그런 게 아니죠.
무조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잘 볼 수 있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저는 제가 제일 못하는 과목이 국어라고 생각했어요.
중, 고등학교 때 국어 내신만 유독 낮았거든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작품 해설, 특징 등을 제대로 듣고 정리하는게 중요한데,
그게 안 됐던 거죠.
물론 이것도 훈련을 통해 나아지긴 했습니다.
고2때 불현듯 대학을 잘 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딴생각하는 제 허벅지를 꼬집으며 선생님들의 모든 수업 내용을 받아 적었죠.
'듣는 것'을 정말 힘들어하는 체질이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되긴 하더라고요 ㅎㅎ
나중에는 대학에 와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또 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의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
점점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변하긴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만큼은 여전히 듣는게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인강도 듣기 싫었어요.
인강 들으면 피곤했거든요.
그런데, 수능 시장에는 이상하리만치 좋은 독학서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많은 수험생들이 보는 시험인데, 왜 강의만 많고 양질의 독학서는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고, 뒤에 적습니다)
시중의 기출 문제 해설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왔습니다.
건방진 생각일 수 있어도,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해설들이 너무 많았어요.
특히 국어 기출 문제의 EBS 해설은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죠.
그래서, 좋은 해설을 보려면 억지로라도 인강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탐구의 경우도 제대로 된 독학 개념서가 없었기에 억지로 인강을 들었고,
수학도 억지로 억지로 인강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생윤만큼은 '현자의 돌'이라는 GOAT 독학서를 알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인강 모의고사를 샀는데 해설지가 없는 거였어요.
이것만큼은 그냥 '안 듣고' 해설지 읽고 혼자 공부하고 싶었는데,
해설을 확인하려면 인강을 들어야 한다니요....
(다만 이것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도 후술합니다)
저는 대학에 가면 꼭 좋은 독학서를 집필해보겠다! 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대학에 갔고,
독학서를 냈습니다.
2.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오랜 기간 책을 집필하고, 수능 시장에 종사해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독학서를 집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요.
제가 3년간 책으로 번 돈, 적지는 않습니다만
책 쓸 시간에 과외했으면 그 몇 배는 벌었을 겁니다.
우리 나라의 출판 환경에서는,
책을 써서 돈을 벌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자세히 말하기는 어려워도, 책은 정말 돈이 안 됩니다.
그나마 오르비북스라는 출판사가 저자에게 많은 권리를 보장해주는 회사이기에
제 상황은 조금 낫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책으로 돈을 벌기는 힘들어요.
심지어는 그 책도 불법 PDF로 복제되어,
수익은 커녕 적자만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입장도 이해해요.
요즘 책값, 비쌉니다.
제 책값도 꽤나 부담되는 가격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산 비용이나 유통 비용 등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가격이지만,
저도 책값이 2만원 넘어가면 비싸다는 생각부터 들긴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재 저자들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자가 아니고,
불법 PDF 공유로 인해 공급자 개개인이 정말 막대한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
불법 PDF 공유를 '교육 기회 평등의 제공'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점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불법 다운로드받는 학생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수능 조금이라도 더 잘 보겠다고 공부한다는 학생들을,
이성적으로 비판은 가능해도 감정적으로까지 미워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불법 PDF 공유가 과연 소수의 공급자에게만 피해를 줄까요?
아니요, 이게 결국 학생을 포함한, 사교육 시장 전체에게 피해를 줍니다.
뭔 소리냐?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 종사자들은 양질의 독학서를 만들 이유가 없거든요.
그 시간에 강의하거나 과외하는게 훨씬 이득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만들 이유가 없으면 안 냅니다.
그래서 서점에는 좋은 독학서들이 없습니다.
또, 인강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모의고사 해설지를 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해설지 주면, 불법 복제해서 사용할 유인이 너무 커지거든요.
그래서, 강의를 구매해야만 해설을 볼 수 있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의고사 해설지 만들어 본 입장에서, 해설지 만드는 거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원래도 해설지 만드는 게 부담되었는데, 이제는 그냥 안 만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된 거죠.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책값은 여러 비용 상의 이유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고,
선생님들은 독학서를 낼 이유가 없고,
인강 모의고사에서는 해설지를 줄 이유가 없습니다.
3. 그럼에도, 나는 독학서를 집필한다.
근데 저는 왜 아직도 오르비에 남아서, 계속 독학서를 집필할까요?
심지어 저는 사교육 일을 평생 할 생각도 없는데 말이죠.
앞서 말했듯, 돈 때문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원하면 정말 객관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럼 명예 때문일까요?
아뇨, 수능 교재 만들었다고 딱히 명예가 있지도 않습니다.
어디 가서 자랑하기도 좀 어색하고요.
그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하게 이타적인 동기?
ㅋㅋㅋㅋ 이건 진짜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그런 이타적인 동기로 제 수백 시간을 쓸 사람은 아닙니다.
이유는,
"재밌으니까"입니다.
저 스스로 최고의 국어 기출 해설을 쓴다는 자부심이 있고,
약간 기출 비문학에서 약간 애매한 부분, 뭔가 연결이 될랑말랑한 부분을
딱! 집어서 명료하게 해설을 작성할 때 제 스스로 쾌감을 엄청나게 느낍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이타적인 사람은 아닙니다만,
가끔 학생들한테 책 잘 보고 대학 잘 갔다는 연락 받으면 기쁘기도 하고,
오르비나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만점의 생각 어떰?' 같은 글에
'좋음', 'ㄱㅊ', '괜찮더라' 같은, 성의 없지만 긍정적인 댓글 하나만 달려도 기분 좋습니다.
관심받고 인정받는거, 기분 좋잖아요.
특히 제가 아끼는 취미에서라면 더 그렇죠.
저는 수능 국어가 취미이고,
아마 다른 일을 하면서도 평생 6,9,수능 국어는 풀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수능이 계속 있다면... 말이죠 ㅎㅎ)
제가 제 책 '만점의 생각'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엄청 많이 팔려서 다 아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 한몫 쥐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딱,
출판사 입장에서 '만점의 생각'을 내는 게 적자가 아닌 상태만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첫 출판 이후로 3년간 준수한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이게 조금이라도 더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적자가 아니면, 출판사는 계속 '만점의 생각'을 내주겠죠.
그러면 적은 학생들이라도, 계속 제 책을 볼 수 있을 거고,
가끔이라도 인터넷에 '만점의 생각 좋더라' 따위의 글들이 올라올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몇 달에 한 번씩 인터넷에 '만점의 생각'을 검색해보고,
그런 글을 발견하면서 소소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분들에게 도움까지 되면 겸사겸사 좋겠죠. ㅎㅎ
그런 의미에서 책 홍보로 마무리 짓습니다. ㅋㅋ
만점의 생각 구매 링크 (교보, 알라딘 등에서도 구매 가능합니다)
책 홍보하는 내용을 좀 더 쓰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위에 글을 너무 길게 써서 힘드네요...ㅋㅋ
제가 쓴 다른 글들 보시면 책 소개글 있을 테니 혹시 관심 있으면 찾아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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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낮은 5등급에게 추천해줄만할까요??ㅜㅜ
앞에 노베 학생들을 위한 개념 파트도 있어서, 할 의지만 있다면 추천 가능합니다. 실제로 낮은 등급대에서 제 책 잘 활용해서 성적 올렸다는 후기도 꽤 있고요. ㅎㅎ
그런데 이게 “독학서”인 만큼, 엄청 두껍고 활자가 많은데, 글 읽는 것 자체를 몹시 힘들어하는 학생이라면 혼자 책을 끝내기가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일단 과외나 강의를 통해 활자에 친숙해지는 연습, 기초를 다지는 과정을 먼저 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국어를 잘하려면 “읽는 연습”을 언젠가는 해야 하니, 개인적으로는 노베 상태에서도 바로 제 책 보는 것을 추천하곤 합니다. 어렵고 긴 글로 가득 찬 책이라서, 이 책 한 권만 끝내도 독해력이 크게 올라가거든요...ㅎㅎ 물론 앞서 말했듯 혼자 끝까지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라서, 학생의 의지력이나 상황을 보고 추천할 것 같긴 합니다!
좋은 글, 가치관을 배우고 갑니다. 책 사서 바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자부심이 원동력이 되는 경우!!
만점의 생각 정말 잘사용하고있습니다.. 제가 지문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지문을 천천히 읽는 편인데요. 지문을 다읽고 문제에 들어갔는데 세부 내용?을 까먹어서 다시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수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이해해서 읽으니까 단순 세부내용 질문 말고 머리써서 논리적?으로 풀어야하는 문제는 풀리는데.. 고민이 많네요
지문 한 번 읽고 모든 선지를 다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뇌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도 대등한 정보의 열거, 직관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수리적 정보가 제시되는 경우, 일단 체크만 해 둔 뒤 문제로 나오면 찾아 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이런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그래도 수능 국어 비문학의 선지 대다수는 세부 내용 일치보다는 큰 맥락을 묻는 문제여서, 지금처럼만 잘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해설보는데 사고과정이 똑같은부분 있어서 너무 기분좋았네요 ㅎㅎ
비문학은 거의 안 틀리는데 생각의 회로를 점검(?)할 겸 독학서를 사는거 추천하시나요?
어차피 수능 전에 기출 몇 번은 더 보셔야 할 테니, 제 책으로 마무리하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분명 배워가시는 지점이 있을 겁니다. 기출을 여러번 반복한, 상위권 학생이라면 7일~10일 정도에 책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1주일이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네요. 해볼게요 ㅎㅎ
수익은 그래도 나오시는편이시죠?
예전에 출간하신 만점의생각 1권 풀고
2회독으로 풀려고한거 (법지문까지만 풂)
아직 남아있는데 많이 바뀌었을까요?
아니면 이걸로 빠르게 하고
이번판 다시 구매해서 2회독 하는거 괜찮을까요?
+군대에서 덕분에 이거 하나로 대학왔습니다!
근데 반수하네요..:)
최근 지문 열댓개 정도가 추가되고, 해설 일부가 수정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제 책에서 강조하는 본질이나 방법론은 그대로여서, 초판의 내용 충실히 학습하신다면 굳이 새 책을 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 해설을 체화해서 교재에 없는 새로운 지문들도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교재 구매를하고 어려움을 겪어서 일단 쪽지를 보내긴했는데 혹시 쪽지도 보시나요?
원래 쪽지는 잘 안 보는데요(모바일로 보기가 너무 불편하고, 알림도 안 옵니다 ㅠㅠ), 일단 보내신 거는 답장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