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브레이커 [420002] · MS 2012 · 쪽지

2015-06-08 10:01:01
조회수 9,822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가져온 글

게시글 주소: https://games.orbi.kr/0006105443

이 글은 6월 7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입니다. 여러분과 읽고 싶어 이렇게 복사해서 붙여넣어 봅니다.
https://www.facebook.com/SNUBamboo/posts/867738729984427

----이하 전문

인생을 정말 서럽게 살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동생들에게 라면스프에 밥을 비벼주던 날 
그 다음날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빚이 많은 우리 집엔 온갖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동생 2명을 데리고 원래 살던 집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야반도주를 했어요.
야반도주를 하고 섬에 숨어 사느라 초등학교 졸업식도 못갔어요.

집도 그냥 주인 없는 집에 몰래 들어가 살아서 아주 더럽고 좁았어요. 
바퀴벌레와 쥐며느리와 함께 잠을 잔 날이 그렇지 않던 날보다 훨씬 많았고, 
새벽에 재수 없는 집이라고 동네 주민들이 집에 던지는 돌 소리를 듣고 일어난 적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동생들 손을 잡고 아빠 몰래 외갓집에 가다가 새어머니한테 들켜서 네발로 달려 뒷산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그 다음 달부터 한 달 용돈이 절반으로 줄어 15000원이 됐어요.

고등학교 2학년 봄,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불법으로 인강을 듣다가 주변에 친구들이 장난으로 했던 ‘너 신고해 버린다’ 라는 말에 혼자 철렁해서 며칠 동안 강의를 안본 적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의 설날엔,
할아버지라는 분이 친척들 앞에서 저와 동생들에게 애미없는 년, 더러운 년한테서 태어난 더러운 새끼들이라고 했을 땐 그분께 개x끼라는 욕을 하고 울면서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어요.

6월 모평 전 날, 
집에서 새어머니의 따님과 아버지가 싸웠어요.
학교가 빨리 끝난 날, 대낮에 집에 들어갔더니
나무로 만들어진 문에 칼자국이 나고, 냉장고의 콘센트는 끊어져 오래된 음식들에서 나온 냄새가 방에 가득차고, 그릇들은 깨져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때,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 날도 있었어요.

대학교 원서접수 마감날, 
그 날까지 원서비를 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아버지 몰래 조금씩 모아둔 적금을 깨고 대학교 원서를 쓰던 날, 제발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한양대 입시결과가 발표되었던 날, 
합격창을 보면서도 등록금조차 낼 수 없는 우리집이 원망스러웠고, 차라리 떨어졌으면 하고 슬펐던 적도 있어요.

서울대학교 합격이 발표되었던 날, 
“그래 역시 넌 내 손주다”하면서 갑자기 저희 집에 찾아온 할아버지를 보았어요.
불과 10년 전, 칼로 문을 따려고 하면서 “문 열어라, 너네 애미 집에 있는거 다 안다. 문 안열면 너네 다 고아원에 집어넣어버릴거다.” 윽박을 지르는 기억속의 그 분과 목소리가 같은 분이었죠.

새내기대학이 끝나고 집으로 내려가는 날,
몇 년만에 어머니를 만났어요.
그 길던 머리는 스트레스성 탈모로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새벽녘에도 콜밴을 몰고 나가는 어머니를 보며 혼자 조용히 울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 손에 쥐어주신 10만원을 보며 제가 쓰는 돈의 무게를 느꼈어요.

전공 기말고사 전날, 
동생이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했고, 아버지는 경찰서로 끌려갔어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했던 집안일들을, 
제가 떠난 집에서 그것들을 고스란히 맡게된 동생은 
저주스러운 집을 원망하며 항상 아버지와 싸우곤 했어요.
그리고 동생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욕지거리를 경찰에 신고해 아버지를 가정폭력범으로 만들었어요.
아버지를 신고할 정도로 매정한 동생을 욕하다가도
그동안 저와 비교당하며, 저 대신 아버지의 술주정을 들어온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끔은 정말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아니, 사실은 많았어요.
잠들기 전엔, 내일을 희망하는 날보다 오늘을 저주하는 날이 많았어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곳이니 뭘 해도 나아질 거라 믿던 제게
계속해서 닥쳐오는 불행한 일들은 마치 저를 놀리는 것 같았어요.

저주스러운 우리집을 원망하고,
나아지지 않는 제 인생을 원망하고
어줍잖은 희망으로 절 고문하는 신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잘 살고 있어요.
항상 사람을,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결국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요.
체념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먹는거에요.

외할머니, 외할아아버지가 제게 해주시던 이야기가 있어요.
미워하고 살지 말아라.
사람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해봤자 속는건 너 속 아니냐.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살아도 
그만큼이나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속이 썩어들어가는 날도 많은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세상을 미워하고 살면 그 얼마나 각박한 세상이냐.

누구나 힘든 일은 겪어보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힘든 일이 있을거에요. 아니, 많을거에요.
모든걸 놓고 싶은 날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내일을 희망해요.
힘들고, 슬픈 오늘이 지나고 다시 내일이 오늘이 되는 날이 올거라 생각해요.
힘들지만 지나간 오늘을 미워하지 않고 다가오는 오늘을 사랑해보려고 노력해요.

새벽에 혼자 우울해져있다가 드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던 중 대숲에까지 올리게 됬네요. 
언젠가 또 좌절할 저를, 
저와 비슷하게 힘들어하는 다른 분들을 응원하고 싶어요!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ㅎㅎ...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


여러분,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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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푼 · 437897 · 15/06/08 10:24

    동생이 너무 불쌍해요

  • 골뭇 · 516190 · 15/06/08 10:32 · MS 2014

    충분한 환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지않고 배부른소리나 찍찍해대는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저 할아버지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네요
    글쓰신 분은 할아버지 낯짝만봐도 토 나오실듯

  • 삼수충충 · 562463 · 15/06/08 10:59 · MS 2015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참된분이셨네.. 그에 반해 할아버지는 쓰레기네요. 서울대 붙었으니까 넌 내 손주다 ㅋㅋㅋㅋ 와 진짜 나이만 헛먹은 늙은이에 불과하다..

  • 낙성대생 · 377106 · 15/06/08 11:32 · MS 2011

    말하지 않을 뿐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아요. 저도 그렇고. 편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 환경이 주어졌음을 감사하세요.

  • 狙擊手[저격수] · 535834 · 15/06/08 16:30

    정말 그런것 같아요. 생각보다 제 주변에도 참 많더라구요.

  • 각자야 · 578430 · 15/06/08 13:01 · MS 2015

    와 나같으면 진짜 할아버지,아버지한테 서러워서라도 욕하고 물건 있는거 다 집어던지고 진짜 누구 하나 피볼때까지 싸웠을텐데
    글쓴이분 진짜 대단...

  • 각자야 · 578430 · 15/06/08 13:06 · MS 2015

    진짜 나같으면 그 할아버지라는 작자한테 욕하면서 싸대기 죽지않을 만큼만 신나게 갈겼을텐데
    솔까 저런 새ㄲ들한테는 인간취급을 해주면 안됨

  • 크리스! · 531014 · 15/06/08 16:31 · MS 2014

    ㅠㅠ

  • Zuny · 443597 · 15/06/08 18:26 · MS 2013

    저 글쓴이분이 서울대생인것과 관계없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용기내어 꿋꿋하게 사는 모습 자체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 Zuny · 443597 · 15/06/08 18:26 · MS 2013

    저 글쓴이분이 서울대생인것과 관계없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용기내어 꿋꿋하게 사는 모습 자체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 Zuny · 443597 · 15/06/08 18:26 · MS 2013

    저 글쓴이분이 서울대생인것과 관계없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용기내어 꿋꿋하게 사는 모습 자체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 Zuny · 443597 · 15/06/08 18:26 · MS 2013

    저 글쓴이분이 서울대생인것과 관계없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용기내어 꿋꿋하게 사는 모습 자체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 데이지. · 523102 · 15/06/08 22:47 · MS 2014

    미워하고 살지 말아라.
    사람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해봤자 속는건 너 속 아니냐.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살아도
    그만큼이나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속이 썩어들어가는 날도 많은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세상을 미워하고 살면 그 얼마나 각박한 세상이냐.

    좋네요..

  • 16연사학 · 579120 · 15/06/09 01:07 · MS 2015

    세상에... 제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글입니다. 저도 험하게자라왔지만 저분은 더...

  • · 612914 · 17/01/15 16:37

    열심히 살겠습니다...와...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