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시절 (12월 ~ 6월)
12월 3일에 수능이 종료된 후 저는 그 다음날부터 공부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수능을 한 번 더 응시하고자 하는 친구들도 다들 이 시기에는 놀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재수종합반 개강하기 전까지는 그냥 휴식하면서 재충전하는 게 좋다고 하셨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풀어지는 게 괜히 죄책감 들고 불편했었기 때문에 바로 공부로 들어갔습니다.
현역 수능을 보기 전에 구입은 했으나 아직 안 풀고 남아있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이창무 선생님의 클라이맥스 수1, 수2, 미적분, 문해전 수1, 미적분을 풀었고 호형훈제 선생님의 딥마인드 수1, 수2, 미적 스텝1, 2 가 남아있었고 이 책들을 한 권씩 풀고 틀리거나 오래 걸린 문제들 위주로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풀다 보니 2월 말에 재수종합반이 개강하기 전에는 어느덧 남아있던 수학 문제집들을 다 마무리되었습니다.
수학 외의 다른 과목들 중에서는 지구과학을 특히 기본부터 다시 쌓았습니다. 고3 시절을 되돌아 보면 지구과학에 대한 막연한,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막판에는 화학 점수가 잘 안 나와서 화학 비중을 높이고 지구과학 비중을 낮췄었는데, 그 결과는 지구과학 3등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모든 자존심 다 내려놓고 대충 훑어보고 문제만 풀었던 수능특강을 설명에 달려 있는 각주와 날개 부분에 추가로 달려 있는 개념, 및 탐구활동, 해설지까지 하나하나 다 뜯어가면서 다시 개념을 다졌고 계속 백지에 외웠던 내용들을 써 가면서 공부했습니다.
국어는 원래 잘 하던 과목이었었는데 수능에서 미끄러져서 2등급을 받은 과목이었습니다. 이미 미끄러져 본 기억이 있는 이상 더 이상 그 과목은 잘 하는 과목이 아니었고, 그리하여 국어 역시 고3 때 학원에서 받던 자료들 중에 아직 안 풀었던 것이 있어서 이것 역시 2월에 개강하기 전까지 전체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화학은 제가 수능에서 받은 유일한 1등급 상대평가 과목이었고 시험장에서도 상당히 자신있게 풀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현역 시절에 틀렸었던 문제들 위주로 다시 풀어보면서 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시켜 왔습니다.
2월에 졸업식이 있었으나, 공부하던 흐름을 잃기도 싫었었기에 가지 않고 공부하였습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수험생의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공부가 유일했기에, 그저 해야 하는 공부를 이어 나갔고 그렇게 2월 말, 대치동에 있는 모 재수종합반이 개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수 종합반 개강 첫 날, 학원에 도착하니 시간표가 놓여 있었어요. 근데 시간표애 그 날 수업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게 없어서 뭐를 할까 하다가 수능특강을 수1, 수2, 미적분을 가방에 챙겨왔길래 그냥 그 세 권을 전부 해치웠습니다. 12시간 동안 그거만 골라서 했더니 결국에 집에 돌아가기 전에 다 풀었더군요.
그 후부터는 거의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주어진 과제 풀고, 과제 다 하면 내가 추가로 풀려고 산 교재들 풀고, 등등 아마 거의 하루에 최소 12시간 가까이는 공부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그저 공부만 하다가 3월 월례고사 날이 왔습니다. 사설이라 그렇게까지는 중요하지는 않은 시험이었으나 저는 수능이 끝나고 나서 그 때까지의 공부한 것을 체크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어느 시험보다도 더 열심히 준비하고 시험도 열심히 응시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국어 85점 (백분위 97) 수학 96점 (백분위 100) 영어 81점 화학1 42점 (백분위 94) 지구과학 1 31점 (3등급) 이었습니다. 국어는 평소 받던 대로 나왔고 수학은 잘 봤으나, 영어, 화학, 지구과학은 작년 수능에 비해 하락했습니다. 열심히 했으나 예상보다 결과가 잘 안 나왔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3월 교육청 학력평가가 있었을 겁니다. 학원에서는 응시가 불가했기에 그 주 주말에 시간을 재고 응시하였습니다.
결과는 국어 백분위 95 수학 백분위 100 영어 2등급 화학 1 백분위 99 지구과학 1 백분위 99 였습니다. 비록 교육청에 불과하지만 월례고사를 보고 힘들었던 기억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후부터는 6월 모의평가를 정조준해서 그 이전 3월 학력평가와 월례고사에서의 약점보강을 위해 영어와 화학 지구과학에 약간 힘을 실어서 공부하였습니다. 매일 매일 학원 와서 자리 앉아서 공부하고 집 돌아가서도 공부하고 주말에도 공부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이제 6월 모의평가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6월 모의평가는 모교에서 응시하였습니다. 모교로 돌아와 보니 정말 다양한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반수생들이. 연세대 반수, 고려대 반수, 한양대 반수, 성균관대 반수, 서강대 반수 등 정말 ‘얘는 왜 반수하지?’ 싶은 친구들이 꽤 많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때 한 차례 동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국어 시험이었습니다. 시험 문제를 처음 열어보는데 지금까지 못 봤던 독특한 구성에 당황했습니다. 그러고 지문에서 생각보다 빡빡한 내용에 고전했습니다.
수학 시험은 나름 무난한 편이었다고 생각했고, 영어 시험은 까다로웠습니다. 화학 시험은 어려웠고 지구과학 시험은 상당히 쉽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마친 후에 집에 와서 채점을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언어와 매체가 78점, 미적분 92점, 영어 89점, 화학1 40점, 지구과학1 47점이었습니다.
지구과학 과목을 제외하면 모든 과목에서 잘 본 것이 하나도 없었고, 국어는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더라도 80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현역 때도 가장 낮았던 백분위 점수가 95점이었는데 처음에 메가스터디 예상 백분위, 등급에 4등급대가 찍혀 있는 거 보고 실신했었네요.
부모님은 이거 보고 ‘넌 대체 수능 끝나고 6개월 간 뭘 한거냐. 맨날 공부하더니 한 거는 맞냐. 멍 때린 거 아니냐’ 등의 이런 식으로 계속 질책하셨습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거든요.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가서는 그래도 좀 쉰다고 할 때도, 주말에는 그래도 좀 쉬자고 할 때도, 저는 조금이라도 밀리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도 절대 멈추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조금이라도 쉬는 것에 죄책감 들어서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결과가 고작 이딴 것인가 하는 생각,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은 거 같은데 다들 저보다 잘 본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고 힘들었습니다.
난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부모님께 저런 말까지 들으니 괴롭고 죽고 싶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 좀 봐달라고, 나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과가 안 나와서 몸도 정신도 너무 힘들다고,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노력을 왜 다 부정하고 몰라보냐고, 정말 외치고 싶었으나 경멸하듯이 보시는 (제 생각입니다.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부모님의 모습에 스스로 굉장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원에서 하원할 때 보면 학원 대로변 앞에 차 불빛도 엄청 많이 보입니다. 저 시기에 그 차 불빛을 보면서 차라리, 엄마 아빠가 보는 앞에서 찻길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시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속 언제 그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집 안에 쌓여 있는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보니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대체 누구 좋으라고 죽는 걸까, 죽는다고 과연 알아줄 사람이나 있을까, 다 잊혀지겠지, 나보다 점수 낮았던 친구들 상대적 위치만 올려주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냥 공부나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도 더 줄였고 (거의 3시간만 자면서 공부했습니다.) 정말 공부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래도 내가 하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알아는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위하듯이, 악에 받혀서 꾸역꾸역 공부했고 그렇게 7월 학력평가가 다가왔습니다.
이 뒤부터는 나중에 이어서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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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시작하실때 성적이 어느정도셨나요?
22213 에 백분위가 95 95 97 87 였을 거에요
잘 읽었어요... 2편 기다리겠습니다!!
언제 나와..이미 나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