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엽 국어] 좀 특별한 문학 개념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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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은 좀 지났을 것이다.
서너 살 된 아들이 갑자기 방귀를 뀌었다.
아내가 환호성을 질러 대며 한 마디 했다.
“이제 니가 드디어 인간이 되었구나!”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방귀가 나왔다.
바로
아내의 꽈배기 같은 소리가 내 몸을 묶어댔다.
“저것도 인간이라고……”
1. 모티프
모티프란 창작의 원천이 되는 특정한 요소, 사건, 낱말, 기법, 공식 등을 말하는데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문학 작품에 자주 반복되어 사용되는 원형적인 요소이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기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자기 희생’의 모티프 재현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자기 희생을 통해 민족을 구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위 시의 ‘십자가’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고난과 시련, 그리고 부활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교회당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자신도 예수처럼 희생을 통해 조국 광복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십자가’로 상징되는 ‘희생양 모티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
cf) 모티프와 소재는 무엇이 다를까?
모티프란 창작의 원천이 되는 특정한 요소로 인상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어 잘 기억되며 쉽게 깨어지지 않는 일종의 공식 같은 개념이다. 모티프 자체에 내용과 상황이 있어 이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소재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들 및 자연 현상, 인물의 행동을 가리킨다. 작품 안에서의 소재는 작가가 선택하여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맞게 변형된 재료라고 볼 수 있다.
모티프는 작가에게 선택되어 작품 속에 사용되더라도 그 의미가 변형되지 않는 반면에 소재는 작품 속 현실에 맞게 변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독립적인 생명력을 지닌 모티프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희생양 모티프
원시 시대에는 제사를 지낼 때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관습이 예술 작품 속에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 이를 ‘희생양 모티프’라고 한다.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눈 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도 ‘희생양 모티프’가 나타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2. 변신 모티프
얼굴이 추한 여자가 아름다운 공주가 된다든지, 개구리가 나중에 왕자가 된다든지 하는 것은 ‘변신 모티프’이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 ‘박씨전’에도 변신 모티프가 반영되어 있다.
2. 낯설게 하기
낯설게 하기란 일상화되어 참신하지 않은 내용이나 정서를 처음 보는 듯이 낯설게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대상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습관화된 틀 속에서 굳어진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표현 방법이다.
어디서 우 울음 소리가 드 들려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오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 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달아나고 싶어
도 동화(同化)야 도 동화(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 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이승하,
위 시는 ‘말더듬이’ 화자를 등장시켜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위 작품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 형식과 표현의 생경함에 어리둥절해진다.
+α )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 ‘인동차를 마신다.’라고 평범하게 표현하지 않고 ‘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
라고 색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즉 ‘인동차’를 주체화함으로써 오히려 객관적 사물처럼 차디찬 시대를 견뎌 지내는 화자의 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낯설기 하기’ 기법이 잘 활용된 예라고 볼 수 있다.
3. 원형적 이미지
원형적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로 모든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공통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인간의 무의식 속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언덕에는 풀빛 짙은데,
우 헐 장 제 초 색 다
送君南浦動悲歌 그대를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 울려 퍼지네.
송 군 남 포 동 비 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마를 것인가.
대 동 강 수 하 시 진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별 루 년 년 첨 록 파
-정지상,
위 시는 우리나라 한시 중 최고의 이별시로 꼽히는 고려 시대 정지상의 ‘송인’이라는 작품이다. 위 시에는 우(雨), 포(浦), 강(江), 수(水), 루(淚), 파(波)와 같은 ‘물’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나타나 있다. ‘물’의 원형적 이미지에는 이별과 죽음이 있다. 이 타고난 천재 시인은 본능적으로 ‘물’을 끌어들여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cf) 예술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물’의 이미지
우리나라 영화든 외국 영화든 간에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가 헤어지는 대목에선 유독 비 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물’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 이미지를 감독들이 차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와 인종을 뛰어 넘어 모든 인간의 DNA에 각인된 원초적 이미지를 원형적 이미지라고 한다.
‘물’은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모든 생명이 물에서 나왔다든지, 더러운 것들은 물로 닦으면 깨끗해진다든지 하는 것은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반면에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나고 강이 범람하여 주거지가 파괴되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죽게 된다든지 하는 것은 부정적 이미지를 구축하게 만들었다.
물 | |
+ 이미지 | - 이미지 |
생명, 정화, 재생 | 이별, 죽음 |
감독들은 이러한 물의 원형적 이미지를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관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반응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문학 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원형적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4. 주관적 변용
주관적 변용이란 시적 화자가 일상적인 현실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꿈으로써 자신의 정서나 생각을 기발하게 표현하려는 기법을 말한다.
(가)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어
춘풍(春風)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
(나)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최치원,
(가)는 황진이의 시조로 ‘밤’이라는 추상적 시간을 마치 구체적 사물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잘라 보관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신 날 밤 ‘구뷔구뷔’ 펼쳐 사랑의 시간을 연장하겠다는 화자의 주관적 변용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최치원의 한시로 실제로는 화자가 속세가 싫어 자연에 묻혀 살고자 한 것인데 마치 ‘물’이 화자와 속세를 단절시키고 있는 것처럼 변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5. 문장 부호의 특별한 기능
우리가 보통 시를 감상할 때, 문장 부호의 기능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문장 부호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시인들이 있기 때문에 문장 부호의 사용에 따른 효과도 숙지해 놓는 것이 좋다.
돌에
그늘이 차고, ……→ 반점을 이용하여 각 연이 가지는 영상 이미지를
좀 더 붙잡아 두려는 시인의 의도가 드러남.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 온점을 활용하여 비 오는 과정을 각각의 장면으로 나눔.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달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낱 ……→ 이 연만 반점 처리를 하지 않음 :
잠시 멎었다가 다시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순식간에
붉은 잎 잎 수많은 빗방울로 늘어나는 연속적인 장면임을 나타내기 위해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
이 시는 비 내리는 모습을 순차적 시간의 질서에 따라 화자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묘사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1~2연은 비 내리기 직전 돌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어지럽게 바람이 부는 모습을, 3~4연은 대지에 떨어지기 시작한 물방울이 ‘산새 걸음걸이’처럼 경쾌하게 튀는 모습을, 5~6 연은 빗물이 모여 여울지어 흘러가는 모습을, 7~8연은 다시 빗방울이 붉은 꽃잎 위에 떨어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반점과 온점은 영화에 있어 장면의 연속과 분할과 같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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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가지셨으니 이미 잘 하시는 길로 가시고 계심.
좋아요
어떤 부분이? ^^
진짜 지금 다시 읽는 중인데 이건 학교에서도 배워야 할 점이네요
문학 개념은 이렇게 시를 앞에서 보여주고 느끼게 해야지 문제 풀때 선지를 언급하며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당장 그 문제만 풀 수 있을 뿐이겠죠
문학 선지는 개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글 올려주시는거 꾸준히 보고 문학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olicfactory님.
좋게 생각해주시니 저도 기쁘네요. 높은 등급의 학생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너무 거추장스러운 방식이 아닌가하고도 생각했는데 좋게 평가해주시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문학작품을 배우면서 아무 감흥없이 넘길때가 많았는데
선생님의 탁월한 시 선정도 문학에 대한 제 생각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ㅎㅎ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모바일에서는 잘 보이는데 PC에서는 중간에 문구때문에 조금 불편함이 있습니다
내년에도 또 올려주신다면 그때는 게시글에 내용을 pdf파일로도 올려주심이 어떠한지요..
일단 제가 쓰는 일은 없어야겠고ㅠ 동생이 봤으면 해서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