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 [401045] · 쪽지

2013-01-03 20:26:29
조회수 2,277

수시와 정시에 대해 말이 많아서 저도 한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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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길이 정시 밖에 없는 현역 군바리 임을 미리 밝힙니다.


먼저 수시와 정시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수시나 정시 비율을 늘리고 줄이고 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여기서 신나게 토론을 하고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해도 바뀌는 게 없습니다. 그저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입시 전형에 따른 전략을 짜고 공부를 하는 게 수험생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시가 너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선 공감합니다. 정시가 좀 더 늘어나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입학사정관제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는 실패한 제도라고도 생각합니다.
단, 몇몇 분들이 뭐 정시대 수시 비율을 9:1로 하자느니 너무 과격하게 나오시는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수시 비중이 왜 늘어났냐 하면 수능 점수 가지고만 학생들을 뽑으니 학생들을 판단하는데 '수능 점수' 가 전부가 돼버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길동이가 각종 수학 경시대회를 석권하고 올림피아드까지 쓸어버렸고 교내 대회는 물론 수학에 아주아주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학생인데 이 친구가 수능에서 수학을 제외한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수능 점수로 이 학생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하면 그저 '점수 낮으니까 넌 우리 대학에 적합하지 않아!' 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실제로 예전에 한 신문사설에서 카이스트 학생이 일본에선 노벨상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선 못 나오는 이유로 대학 입시 제도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만 잘하면 일본에선 그 방면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부분을 밀어주진 못할망정 나머지도 다 잘해서 와라 라는 식의 입시 때문에 우수 인재들을 놓친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제가 고등학생 때 봤던 거라 출처를 못 찾겠네요. 아무튼 이 문단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수능 점수로 학생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수시 전형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학생들이 수능을 잘 쳐서 대학을 가는데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 하니까 나라에서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EBS를 연계시키면서 등장한 게 입학사정관 제도와 여러 수시 전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이 있습니다. 기존에는 그냥 수능을 잘 치기만 하면 됐습니다. 사교육비도 수능에만 들이면 됐습니다(물론 논술도 있지만). 그런데 입학사정관 제도 및 여러 수시 전형이 생기면서 거기에 드는 사교육비들과 학생들의 부담이 늘어났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경감시키려 도입한 이 제도가 오히려 사교육과 부담을 더 들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정시 비중까지 줄어버려서 많은 학생들이 수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사교육비가 기존 보다 더 들게 됩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위에서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판단할 수 없는 취지에서 생긴 수시 전형들도 수능 최저등급이 있으니까 결국은 수능을 잘 쳐야합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수시 대 정시 비율을 4:6 정도로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주위에 '와 쟤는 어디어디에 두각을 나타낸다' 혹은 '정말 저 분야를 좋아하고 관심있어한다' 이런 학생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뽑기 위한 수시 전형은 비율을 조금 줄여서 진짜 인재를 뽑는데에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점수로는 평가할 수 없는 학생의 진면목을 평가해서 뽑자는 말이에요. 나머지는 그냥 공정한 시험으로 경쟁하게 하면 됩니다. 그게 아니면 진짜 교육제도를 뿌리부터 확 뜯어고쳐서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제대로 도입을 하든지요.

정신없이 쓰다보니까 중구난방 모순되는 말도 있는 거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수시 대 정시 비율이 4:6 정도로만 줄어들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여기서 우리가 토론해봐야 바뀌는 게 없으니 주어진 조건에서 최상의 전략을 짜서 입시에 응하자

정도겠네요.


p.s 위 글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요, 가끔 오르비를 눈팅하다 보면 여기엔 고등학생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벌이 전부인 마냥 말하는 친구들이 몇몇 보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서울대생이 하면 '우와~' 하고 쳐다보지만 배재대생이 하면 '에이~' 이런 식으로요.
제가 올해로 22살로 여러분보다 그리 더 많은 날을 산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저랬던 적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추가합니다.

사람을 절대로 학벌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얼마 전 '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 라는 책을 훑어봤는데 이 책의 저자가 계명대학교 출신입니다.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자기가 입사하고 싶은 광고 회사에 원서를 넣으려 했더니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근데 이 저자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의 높으신 분들이 주는 광고나 마케팅 관련된 상을 수십번을 더 받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지방대 출신에 변변한 영어성적도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게 책에 쓰여있는 걸 봤습니다. 지금은 결국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벌은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가지 기준 중 하나지 전부가 아닙니다. 이 말을 예전부터 언젠가 꼭 하고 싶었는데 오늘 기회가 닿아 해봅니다.

입시를 준비하시는 분은 대학에 뜻을 두신 분들이니 좋은 결과를 바라고, 이미 대학을 다니시는 중이거나 앞으로 대학을 다니실 분들 '아 난 왜 서울대생이 아니지?' 보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에 만족하시면서 얻으실 수 있는 걸 최대한 얻으시고 자기 자신을 학벌이 아니라 나만의 능력으로 꾸미는 멋진 대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난잡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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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전뺀질이 · 433107 · 13/01/04 00:08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떤 제도든 꾸준히 하면 잘 정착 될텐데...입시제도가 널뛰기하듯 수시로 바뀌는게 문제지요.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갑작스런 수시확대와 정시 축소로 전환된 지금의 입시제도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학교 정규과목도 아닌 논술비중을 높이는 것도 그렇고...
    정보와 사교육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제도확대는 누가봐도 특권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sky17 · 259161 · 13/01/04 01:41 · MS 2008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과거 입시전형의 문제때문에 바람직한 관점에서 탄생되었을 수 있는 다양한 전형방법들이, 정시에 대한 역차별로 인하여, 오히려 장점이 퇴색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 공교육에서 실질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현장 상황을 점검해 보고, 의견을 모아 본다면 정시 수시 비율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일부 지나친 의견이 있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거의 그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전형에서의 합불을 떠나서요.

    우리가 여기서 이래봤자 바뀌는게 없다는 생각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글쓰신 분 지적처럼, 일단 시행되고 있는 제도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하는 것이 수험생의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맞습니다. 올해 수험생들은 올해 발표될 전형방법으로 준비를 해야만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포기한다면, 그건 발전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내년, 계속 수험생들은 생기니까요..

    어떤 학생들이 수능준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요? 지금의 전형 방법이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상황이고, 우리는 그 길로 가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라면, 고통을 감내할 수 밖에 없겠죠...그러나, 다행히 미뤄진 Neat 수능대체 소식으로 황당했던 기억과, 당장 A형, B형 수능시험은 진심 걱정됩니다...

  • 양재편의점주말오전불쌍한알바 · 398440 · 13/01/04 13:05 · MS 2011

    이 글은 좋네요

  • 성태제 · 425800 · 13/01/04 14:31

    본문도 좋고 추신은 더 좋고...

  • 멋진공돌이 · 341856 · 13/01/04 17:20 · M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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