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비시박령 [402380] · MS 2012 · 쪽지

2020-12-04 17:13:33
조회수 3,198

문과생들에게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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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험생 여러분에게 수고하셨다는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해마다 입시 정책이 바뀌는 건 이제 그러려니 싶은데, 올해는 코로나 크리까지 터졌군요. 덕분에 학교에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학생들의 반수러시도 어마어마했고요. 여타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정시 지원이 카오스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이때 여러분이 한 번쯤은 읽고 고민해보셨으면 하는, 그리고 제가 대학교 가기 전에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던 내용을 몇 자 적고 싶습니다.


저도 많은 내용을 알지는 못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러분보다 학교를 먼저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은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를 무릅쓰고 여러분께 주제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제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읊조라는 식으로 말해보려 합니다.


이전에 쓴 글을 조금씩 가공하여 주저리주저리 적으려니 양해 부탁드리길 바랍니다.


1. 폼나는 직업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 플랜B의 중요성


 대학교 입학하기 전에 저는 막연히 행정고시를 보거나 외교원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간지나잖아요. 직업을 갖게 된다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이왕이면 폼 나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모든 1학년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비슷한 내용으로 차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능을 잘 봤든 못 봤든, 나중에는 로스쿨을 가거나 행시를 쳐서 사무관이 되거나 외교관이 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국사 교양 첫 수업 때 교수님이 임의의 새내기 3명을 지목하여 자네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세 학생이 차례로 검사 외교관 판사라고 대답했을 때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들 이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어떻게 이렇게 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대입 자소서에도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채우지 않았을까. 12년간 공부를 열심히 해왔으니 앞으로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충격받았던 것은 새내기 때 학교 열람실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지하에 꽤 큰 규모의 열람실이 있습니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츄리닝 차림으로 초췌한 모습을 한 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고시생들이었습니다. (혹자는 CPA는 고시가 아니라며 폄하하겠지만 어쨌든 어려운 시험이므로 편의상 고시생으로 퉁치겠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내용들을 보고, 1년에 단 한 번 있는 시험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니 그것 참 힘들어보였습니다. 물론 붙었을 경우에 그만한 대가가 따라오긴 하지만, 적어도 1학년 때의 제가 생각하는 캠퍼스 라이프를 전혀 즐기지 못한 채 (고3 때 공부는 다 한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공부하는 걸 보니 숙연해졌습니다. 


5급 공채(외교원 포함)의 경우 전국적으로 300명 정도가 붙습니다. 1차 접수 기준 경쟁률이 3X:1이고, 1차 시험은 대략적으로 7배수로 뽑으니 2차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1차시험을 보는 한개 고사장 중 대충 한 라인 정도 비율입니다. 2차시험을 붙은 사람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사무관이 되는 사람은 그 라인 중 한 명 정도 비율이겠네요. 나름 소싯적에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시험을 준비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낙방의 쓴맛을 맛본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전공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묘했습니다. 


물론 붙은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습니다.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군가는 시험에 붙는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취직 걱정을 할 때 고시 합격한 친구들은 꽤 폼나는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도 떨어질 경우에는 꽤나 암담해집니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는요. ''특히 요즘같은 시대''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도 나중에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뻘글 쓰려니까 자꾸 중언부언하게 되네요. 요는, 한번쯤은 공부해서 시험치는 것을 제외한 플랜B에 대해서도 생각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험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 하는 것 말고, 본인이 이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하는 것을 한 번 찾아보시고, 정말 즐길 수 있는 것을 한번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학부 4년 + 군대 2년 동안 이거 하나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p.s ^꼰^ 이나 ^틀^ 소리 들을 거 각오하고 올린 겁니다. 사실 제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해서 남 앞에서 제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입시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번쯤이라도 누군가가 이걸 읽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뻘글이라도 올릴 생각입니다.


기타 질문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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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처쇼크 · 726580 · 20/12/04 19:10 · MS 2017

    맞는말씀,,근데 솔직히 모르겠음 내가 정말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하고, 흥미있는 분야? 돈 좀 못벌더라도,수입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사회적 지위 좀 낮더라도 이런거 다 감안하고서라도 뛰어들수 있는 직업? 전 못찾겠네요. 그래서 공익근무하면서 cpa준비도 병행해볼 생각입니다. 뭘 하던지 힘들지만 전문성이 없으면 더 힘들다고 생각하니깐요.

  • 호르비시박령 · 402380 · 20/12/04 21:26 · MS 2012

    cpa 응원합니다!

  • kwon san · 862495 · 20/12/04 22:17 · MS 2018

    정말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문과 재수생으로서 지거국 행정학과 면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보다 더 뒤쳐진 위치라고 항상 자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꿈은 행정학과 교수입니다.. 고교 3년동안 무시도 많이 당하고, 스스로 좌절할 때도 많았습니다.. 올해 대학을 합격하게 된다면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제대로 직시하고 싶습니다.

  • 호르비시박령 · 402380 · 20/12/09 10:44 · MS 2012

    존버는 승리합니다.

  • 구분짓기 · 849233 · 20/12/09 11:14 · MS 2018

    작성자님은 진로를 결정하셨나요? 아직인가요?

  • 호르비시박령 · 402380 · 20/12/09 12:53 · MS 2012

    일단은 지금 당장 돈 버는 쪽으로는 안 갈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