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만흥 38번 해설 - '관념적'은 출제 가능할까?
들어가기에 앞서, '관념적'이 수능 국어/언어에 몇 번 나왔는지 봅시다.
'고정 관념'의 관념이라든가, '관념'이 단순한 '생각'을 칭하는 경우는 제외했습니다.
18 6월 '관념적 덕목' (틀린 선지, '관념적 덕목'은 맞았음)
17 수능 '관념적으로 서술' (틀린 선지)
16 9월 A형 '[가]는 관념적인 문제를,[나]는 실제적인 문제를' (틀린 선지)
14 9월 B형 '현실에 대한 관념적 인식' (정답 선지)
14 9월 A형 '공감각적 심상을 통해 관념적인 대상을 묘사' (틀린 선지)
12 수능(비문학) '논리철학논고'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다루었던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해 관념적으로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틀린 선지)
09 수능 '㉠은 사실의 기술이, ㉡은 관념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틀린 선지)
맞는 선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또, '공간'에 대해 관념적이라고 칭한 적도 없죠.
9평 38번에 '경험적 성격과 연결된 공간', '관념적 성격과 연결된 공간'이라는 선지가 맞게 나온 것이
여러모로 이례적이긴 하죠.
다만 제 생각을 밝히자면
'관념적'은 충분히 선지로 나올만 하다.
그러나, 수능에 나온다면 아마 정답 선지로는 안 나올 것 같다.
요 정도가 되겠네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 글에서는 위에 나온 사례 몇 개만 가지고 '관념적'의 의미를 잡아보고, 38번 해설하겠습니다.
글이 길지만 어렵진 않습니다. 집중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16 9월 A형
정답 : 5번
봐야할 것은 4번 선지입니다. 틀렸죠, 왜 틀렸을까요?
[가]는 동편의 이웃에게 쟁기를 빌리고, 서편에서 호미를 빌리고 씨앗 마련하고...
굉장히 구체적인, 또 현실적인 행동이 드러납니다.
이외에도 봄날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주었고, '춥고 주린 식구'라는 매우 현실적인 소재가 나옵니다.
모로 봐도 '관념적'이진 않습니다. 관념적이라 함은 구체성이 낮고, 포괄성이 높아야 합니다.
또, 현실의 명확한 요소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소재여야 합니다.
이 문제에서 한 가지 더 눈여겨 볼 점은, 2번 선지에 '추상적 소재'라는 부분입니다.
이번 2021 9평 1번에 경험적, 관념적이 나오고 2번 선지에는 뭐가 나왔죠?
구체성, 추상성이 나왔습니다. '관념'에 대해 판단하려면 '추상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평가원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관념적'이 맞으려면 어떤 서술이 있어야 할까요?
14 9월 B형입니다.
최인훈의 광장이죠.
주어진 부분에서 뭔가 구체적이고, 삶과 관련된 강한 경험성이 드러나나요?
전혀 아니죠. 표현도 시적이고, '죽음'에 대한 얘기라든지, 추상성이 강합니다.
이때 이번 9평과 같이 이례적으로
2번 선지가 맞는 선지로 나왔습니다.
인물의 의식과 내면과 결부될수록 관념성은 커지고, 경험과 객관적 사실에 의존할수록 관념성은 떨어집니다.
비문학에서도, 그리고 수능에서도 이런 '관념성'은 문제로 나왔습니다.
12 수능입니다.
정답은 4번이었습니다. '관념적'은 5번에서 틀린 선지로 나왔습니다.
지문도 해설할 가지가 있는 것이지만 내용 몇 개만 보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경험할 수 있는 것'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 속에 실재하는 대상을 얘기하자고 했는데,
<보기>에서 그는 자신의 책도 '말할 수 없는 것'='의미 없는 말'이라고 말했죠.
왜냐? 그는 '논리적 그림'을 말했는데,
논리적 그림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이고,
이는 경험적 세계와 언어의 '추상적' 관계를 드러낸 것이죠.
(제가 관심있는 분야라 TMI 길게 풀 수 있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설명은 기존의 철학이 가지고 있던 추상성, '관념'을 비판한 것이기에
5번 선지는 맞을 수 없고,
그럼에도 그의 서술 역시 '논리'라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사용하기에
다소의 관념성을 지닌 것이죠.
이해가 덜 된 채로 이 문제를 푼다면 3번과 4번, 5번이 같은 얘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만흥'을 볼까요?
'산수 간' '바위 아래'에 '띠집'을 짓는답니다.
<제 1수>의 '산수 간'은 바위, 띠집과의 공간적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상당한 구체성이 드러납니다.
다만 <제 6수>의 '강산'은 어떤가요?
앞서 나온 '산수 간', '바위', '띠집', '먼 뫼' 등의 장소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여기서의 강산은 '자연 일반' 또는 '국가, 사회'를 뜻하는 것인데,
이렇게 범위가 커질수록 추상성은 강화되고,
애초에 '님군 은혜' 덕분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실제적인 얘기랑은 많이 동떨어져 있잖아요.
맥락을 통해 '강산'을 파악하자면 '임금님 은혜 덕분에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추상적인 범위로 파악하는 것이 맞습니다.
'관념적'이 사설틱하다는 얘기도 이해는 갑니다만
그렇게 판단하시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실 만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ps.1 이항대립에 대해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관념은 흔히 경험적, 구체적, 실재와 구분됩니다.
이런 '관념'은, 아까 '강산'이 '바위'나 띠집'을 포함했듯
구체적인 대상, 관념적이지 않은 것들을 묶어서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항대립을 외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저는 거시독해 칼럼에서(https://orbi.kr/00031467438)
11수능을 예로 들며 예술의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대비했고,
이것이 이번 9평에도 출제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미학에서 형식과 내용을 구분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관념'이 '경험'과 이항대립쌍이라는 점은 알면 좋지만
이것 역시도 지문 안에서 주어진 내용에 따라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항대립은 지문 안에서, 문장 안에서만 판단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제 해설을 보시면 알 수 있듯 '만흥' 38번 문제는 지문 안에서 이항대립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관념vs실재라는 느낌을 알아야 한다고 가정한 문제들도 기출에 있었죠.
거시 독해 능력과, 문학 비문학에 대한 누적된 경험 모두가 필요해 보입니다.
ps.2 저는 이번 문학 문제 퀄리티 만족스러웠습니다.
비문학 행정입법 지문 해설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해설, 배워갈 부분이 많은 해설 준비하고 있습니다.
ps.3 좋아요와 팔로우 부탁드립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올해 재수생인데 수학 과목 선택하는데에 고민이 있어서 물어봅니당 작수 성적은 원점수...
-
탈릅한건 알겠는데 언제쯤 나간겨
-
하 복귀한다 0
연대 조발 때문에... 과외생 과제 준비하면서 수업 준비 하면서...복귀해야지
-
2만원에한벌이맞지십만원넘어가면사기싫어짐블랙프라이데이때바지11만원주고샀는데한달만에8키로...
-
딴데 붙으면 글로 감당
-
연대 상경 패기 ㅠㅠㅠ 문돌이는 웁니다
-
ㅠ
-
점공 2
점공에 없던 애들은 보통 최상위 애들일까요? 라고 연대 쓴 친구가 물어봐서 써봅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
머리 아플 때 타이레놀이란.ㄴ 약 먹으면 나아질 수도 잇음뇨
-
나도 인서울하고싶어써...
-
내가 넘볼 사람은 아니엿어 …
-
좀 많이 돌듯한데 어떻게 보시나요?
-
그 후로 장기간 수험판을 못 떠나고있다는..
-
생1 유전 내신 0
저희 학교가 생1 좀 어렵게 나온다는데 내신 대비로 백호 상크스 유전만 듣는거 좋을까요?
-
연세대 0
갑자기 8시에? 퇴근 안하나 연>>>>고 ㅇㅇ
-
롤하실 분 8
ㅇㅇ
-
있겠죠? 근데 남탕이려나요?
-
술마실사람 4
혼자 마시는 중 ㅠ
-
초일류명문대학의 저녁7시 조발이라니
-
연대 신촌캠 한번 다녀오면 고대 가려던 사람도 연대로 마음 바꿈 연대가 캠퍼스는...
-
합격인증 글일듯
-
알빠노..겠지 아마도
-
연심리 0
대기 12번이면 그냥 가능성 없다고 봐야되죠?ㅜㅜㅜ
-
연대가 조발한거 의식하는 와중에 입학처에 전화 ㅈㄴ 걸려오고 내일 조기발표 할듯...
-
요즘그런생각이듦 14
어떻게 해야 서울대 발표날 메인을 갈 수 있을까
-
팔로워 팔로잉이 동시에 줄었네
-
메인가기 힘드니 과외빌런썰은 내일올리도록하겠음
-
고대 뭐함 0
이걸 연대보다 늦게하네
-
;;
-
QED
-
수많은 합격증을 뚫고 메인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솔직히 서울가고싶음
-
반박시 North 고려대학교 ㄱㄱ
-
안그래도 4명 정원에 문디컬 최상위라서 매년 허수 표본 심어져 있고 실지원 점공...
-
고2때 오르비 시작했는데 고1때 상담에서 담임쌤이 너정도 내신이면...
-
닉변완 10
조발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연대를 붙었으니 2
서울대를 편하게 기다릴수 있겠군요 ㅎㅎ
-
지거국에도 인서울처럼 라인이 잇음뇨
-
기차지나간당 2
부지런행
-
하 인제대 2
조발 안하나ㅠㅠ
-
웰컴키트 같은 거 있나 궁금해서 찾아보는데 갑자기 경복대가 나오노 못 알아채서 영상...
-
나도 자랑할래
-
ㅈㄱㄴ
-
우울하다 우울해 12
다들 부럽구만..
-
애매하다 점수가 하아…
-
계산기 3
예비 12번인데 점공계산기랑 10넘게 차이남!
자료 잘 보겠습니다! 선댓후감
맞추긴 했는데 정확한 해설 들으니 또 새롭네요
문학 어려웠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EBS 연계를 챙겼냐 안 챙겼냐와 관계 없이 선지를 판단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수능때는 문학 이거보단 조금 낫겠..죠?
네 위에다 써놨듯 '관념적 성격과 연결된 공간' 이런 것도 수능에 나올 수는 있는데 아마 확실한 정답, 오답 선지가 또 있을거에요
지렷
항상 도움되는 칼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킹민추
심추
와우 칼럼추 !
형님 유튜브에서 보고나서부터 글 쓰신거 볼때마다 눈앞에서 말씀하시는것처럼 아른거림 ㄷㄷ
ㅋㅋㅋㅋㅋ 인강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보고 싶은데 바빠서 계속 미루게 되네요 ㅠ
대단쓰,,,,
잘보고가용 감사합니다
관념적이라는 용어에 대해 굉장히 추상적으로 알고있었는데 뭔소린지 이제 알거같네요 감사합니다
갠적으로 이번 9평 되게 좋았습니다.. 평가원의 지향점을 한번더 각인시킨 시험이네요 내년 수험생들은 좋겠습니다 ㅎ
오..해설 깔쌈하네유 팔로우박고갑니다??
문학이 문제라 생각했는데 이번 9평 문학 다맞고 비문학만 2개 틀렸네요 비문학에 앞으로 조금더 비중을 둬도 괜찮을까요? 6월에 문학만 2개 틀려서 문학공부를 조금 더 해왔습니다
이거 팡일쌤 full e에서 설명들어서 바로풀어서 다행..
작년에 봤던 때랑은 느낌이 새롭네요 뇌 속의 전구가 켜진 느낌?
생각의 전개에 이어서 또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