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사냥꾼 [251373] · MS 2008 · 쪽지

2012-08-03 01:44:38
조회수 576

2005년도 수능 언어 문제19번 질문(지문&문제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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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학년도 수능 19번 문항에 대한 지문이구요

19번 문항입니다.


제가 질문 드릴내용은 두 가지 인데요, 2번의 부적합성과 3번의 해석의 적절성입니다.
답은 3번 이고요, 나름 해설지의 해답이 맘에 안드는것도 아닌데(마닳) 2번에 대한 코멘트가 없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음... 일단 지문을 보면 시자체의 제재이자 화자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인 은행나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자의 의지를 나타낸다는 것은 곧 화자의 의지를 옅볼 수 있으므로,

'노래할 수 없다',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라는 표현이 의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혹은 조금 넓게는 맥락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반증만 보이는데,
첫째로 '적으리라' 등의 표현이 아닌 '적힐 것이다'라는 수동적 표현의 주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 대상의 자극(희망)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희망이 생겼다고 해도 희망찬 상태가 희망찬 의지가 될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둘째로 '노래할 수 없다' 는 것은 외부 대상에 의해 제한 받은 상황이므로, 오히려 화자의 의지가 제한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답을 고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석의 범주를 넓혀서, 자연물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므로 자연물과 화자를 최대한 연결시켜 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아도 화자가 고무되고 희망차게 된 상황이 화자 자신의 의지로
나타내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번 보기에 대해서는 ㄹ의 위 아래를 문맥을 잘 살펴보면, ㄹ 같은 상황이 와도 은행나무와 있으면 은행나무가 화자를 희망차게 해준다는 것으로 봐서 ㄹ은 희망과 대비되는 ㄹ은 절망적인 상황을 대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ㄹ의 앞부분에는 절망을 '다시' 노래할 수 없다고 했는데, ㄹ을 가정적 상황이라고 읽어낸다면, '혹여 절망적 상황 온다 할지라도(ㄹ)'로 ㄹ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3번 보기의 '자기~끌고'를 하는 주체인 '누군가'는 자신의 절망('자신의 절망'이라고 한 이유 위태로운 위태롭게 곡예하는 도롱이집에서 추론했습니다)는 을 이끌고 절망을 퍼뜨리려 은행나무로 오는 자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절망을 이미 수용한 자인 '누군가'는 상황에 대한 운명적 수용을 한 존재로 볼 수 있을것입니다.

이 지문에 대한 배경지식을 보면 확연하게 제 해석이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는데, 그런 배경지식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보이네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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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쏙군 · 373497 · 12/08/03 10:53 · MS 2017

    질문자체가 너무길어서 잘 정리가 안되지만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요 노래할수없다와 적힐것이다가 문맥상보면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아니고 절망을 노래할수없게 하겠다 희망을 적히게 하겠다 라는 뜻으로 쓰인거같은데요 예를들면 어떤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자꾸 다가오면 여자는 너는 나를 사랑할수없다라고 하면 사랑할수없는 그상황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넌 나를 사랑하지마라라는 의미적 표현이 내포되어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희망이 가슴에 적힐것이다 라는 표현도 비유적 표현이잖아요? 하지만 희망이란게 여기서는 비유적표현으로 드러나있지만 희망을 가진다는건 실제적으로는 화자가 의지를 가져야 가능한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쏙군 · 373497 · 12/08/03 10:57 · MS 2017

    그리고 두번째 내용은 절망을 수용하는게 선택지에서 의미한건 화자가 절망을 수용한다는뜻입니다 하지만 이시에서 화자는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지고있으니까 틀린진술이구요 그리고 설령 선택지에서 주체가 누군가라고 가정한다해도 말이 되지않습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불법으로 들어서는 자입니다 즉 절망을 가져온다고 생각해보면 절망을 끌고오는자이지 절망을 수용하는자는 아닙니다 출제자가 묻는것은 자기몫의 도롱이집을 가지끝에걸고 이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운명적수용이라고는 절대 볼수 없습니다.질문자께서는 누군가가 이미 운명적수용을 한 상태라고 가정을 하셨는데 출제자가 물어본것은 해당구절의 의미의 적절성입니다 전체적 내용을 어찌저찌 종합추론해서 그런의미를 끌어 낸다고 해도 적어도 저 구절안에서는 누군가가 절망을 끌고 들어오는 상태로 정도 밖에 해석될수없습니다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가지끝에 도롱이를 건것이니까요

  • (바퀴)벌레사냥꾼 · 251373 · 12/08/04 01:56 · MS 2008

    밑에 분 댓글에도 댓글을 그렇게 달았는데, 끌고라는 서술어의 주어가 누군가가 되므로 수용하는 주체는 '누군가'로 보아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도롱이집이 문제가 되는데, 도롱이집을 스스로 내건다는게 의지가 포함되서 운명적 수용에는 적절치 않지 않느냐는 뜻이신가요? 도롱이집의 상태가 위태로운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지 없이('그는 문을 연채로 들어왔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보면 그가 문을 연겻과는 별개로 닫으려는 의지없이 들어왔다는 쪽에 의미의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매달고 들어서면 그것은 자신의 상태를 이미 수용, 즉 운명적 수용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정한 것은 비약에 범주에서 가정한 것이 아닙니다. 지문구조가 유사하게 연결되고 의미구절의 해석방식이 지문 내적으로는 그렇게 해석될 수 밖에 없기때문에(그렇지 않았다면 의미맥락이 맞지않고 자잘한 부사어들이 맞아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저도 선지를 판단할 때 제가 먼저 판단하지 않고 선지가 해석의 '타당성', 다시말해서 내가 보는 관점과는 상관없이 보기의 해석이 정말로 타당한지를 넓게보든 좁게보든 상관없이 완전히 틀릴경우에만 골라내면서 풉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저에게는 상당히 오답과 정답이 정반대로 판단이 되서 질문을 드린겁니다.

    첫번째 댓글은 예문을 들어주셨는데, 예의 상황을 그대로 적용해보면 '(은행나무 덕택에) 아무도 절망을 노래할 수 없게 하겠다.','(은행나무 덕택에) 희망이 우리 가슴에 적히게 하겠다' 이상하죠? 단언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모두 의지가 담겨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문장들이 이상한 이유는 예문과 달리 어떤 행위나 작용을 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문의 '사랑하지마'는 내 의지로 내가 너를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지만, 이 경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은행나무 존재 -> 아무도 절망 노래못함 이렇게 연결 되는거죠. 따라서 예문에서 유추하여 지문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데는 조금 적합성이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 ㅅFSH · 363307 · 12/08/03 17:22 · MS 2010

    그냥 전체적인 맥락이 화자의 의지에 관한 것이고
    2번을 봤을 때 어구의 특징들 절망을 노래항 수 없다(앞으로 부정적인것은 없을것이다) 희망과 불타는 형상이 우리 가슴에 적실 것이다(앞으로 긍정적이게 될 것이다)라고 확신하고 있기때문에 화자의 의지라고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명적 수용은 의지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의지없이 그냥 받아들이는겁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맥락상봤을때도 틀립니다.
    다시말해서 '부정적인 누군가가 도롱이 집을 ~~ 하고 다시 이땅위에 부정적으로 들어선다해도~~~적힐 것이다' 라는 의지가 드러났으므로 운명적 수용은 말이 안되죠

    만약 운명적 수용이되려면 부정적인것이 들어서도 이것은 운명이니까~ 받아들여야지~ 라는 마음을 갖겠죠..(못들어 설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요)

  • ㅅFSH · 363307 · 12/08/03 17:23 · MS 2010

    그리고 문학을 너무 비문학처럼 투박하게 풀려고 하지 마시고
    느끼세요 문학은

  • (바퀴)벌레사냥꾼 · 251373 · 12/08/04 01:32 · MS 2008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때 화자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질문을 했는데 화자의 의지에 관한 것이라고 하시면 좀.....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요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드네요.

    그리고 '단언'하거나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적이 없는데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요? ㅅFSH님이 말씀하신대로의 '운명적 수용'으로 처음 질문드려서 의미차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분다 주체를 '자기 몫의 ~ 걸고'의 주체를 화자로 보았는데 지문 보면 '누군가' 아닌가요? 끌고라는 서술어의 주어부가 '누군가'가 되므로 '누군가'가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P.S. 느끼면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