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EEN [315071] · MS 2016 · 쪽지

2010-02-15 14: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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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찬가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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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은 반복된다. 그 생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지. 그런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고, 다만 오늘도 어제의 일을 계속한다. 책을 넘긴다. 문제를 푼다. 채점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괴롭지 않아. 힘들지 않아. 외롭지 않아…… 그렇게 짧은 2월도 저물어 갔다. 그리고 모두가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3월이 다가왔다.







           







 3월이 되자 등원길이 한결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 타면 일몰만큼이나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학의천 건너편의 아파트들은 빛을 등져 어두운 실루엣으로 보이고, 그 뒤의 하늘은 금색에서부터 몽환적인 보랏빛으로
이어지는 강물 같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사당역에 도착할 때 즈음해서 연한 푸른색으로 바뀐 하늘은, 네온사인이 꺼진
술집들과 어울려 일출 무렵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칙칙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3월의 시작과 함께 보이지 않던 그들이 길거리며 버스며 전철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교복을 벗은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질릴 것만 같은 이 거리감은 무엇일지. 소속 없는 고졸자는 심란할 수밖에
없다. 저들처럼 전철 안에서 단어장을 꺼내 외우기에는 내 신세가 부끄러울 뿐이고, 친구들과 대학 얘기, 공부 얘기를
하기에 추레한 내 모습은 '나 재수생이오.' 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치장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라도, 적어도
재수생 같은 차림은 아니도록 입고 다녔다. 사실 가진 츄리닝이 없었을 뿐이지만.



 3주 정도가 지나니 이제 반 친구들과의 거리감도 조금씩 좁혀져갔다. 가까운 자리에 앉은 친구들부터 말을 트기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중학교 때 동창도 있었기에 여러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고 반에 정착해갔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이미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역시 '불 좀 빌려주세요.'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마법의 부싯돌 같은 인사말인가보다.

 나의 자리는 가장 앞 줄, 문 바로 앞이었다. 2주간 선착순 자리로 앉은 후에 담임선생님은 '다음 주 월요일 선착순으로
앉는 대로 2주간 자리' 임을 공표하셨고 그 날은 결국 일찍 왔음에도 앞자리의 황금석(席)은 다들 들어차 있었다. 결국
남아있던 유일한 앞자리인 문 앞자리에 앉았을 뿐이고, 그 결정을 후회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추웠다. 3월 초 복도의 외풍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여자애들처럼 무릎 담요라도 덮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찮음이 천성인지라 꿋꿋이 버텼다. 그리고 문 앞이라 쉬는 시간에 다들 들락날락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덕분에
비몽사몽으로 이어지는 수업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논술 시간은 그런 거 없고 무조건 뒷자리로 간 다음에 잤다.
그래도 앞자리인 덕에 수업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고 가끔 판서 내용을 스스로 가로막는 일부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안 보여서 못 적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의 들을 수업, 안 들을 수업이 슬슬 갈리기 시작했다. 보통 언어에서 한 수업, 수리에서 두 수업, 외국어에서 한
수업 정도는 적당히 안 듣거나 졸거나 하는 편이었다. 언어는 선행반 경험이 있는 친구들 의견으로는 최적의 조합에
가까웠지만 수리는 대부분 수업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 황성록 선생님 외에는 실로 '이과스러운(은 '어렵다'로
정의한다)' 수업방식이 대세라 다들 별도로 인강 하나씩은 구비하는 듯 했다. 외국어는 다들 열심히 듣는 것 같았다.
중학교 때부터 살인적인 양의 영어 공부를 했고,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재수학원의 영어 수업은 최고의 효율성을
가진 수업이었다. 일단 수능 외국어 영역에 한해서는. 고등학교 시절 있는 실력으로 대충 풀던 얼치기 1등급이었던 나는
학원의 수업 내용 자체가 꽤 충격이었다. 셜록 홈즈 식의 표현을 따르자면 '방 안의 잡동사니를 찾기 쉽게 정리하는' 그런
것이었다.

 사회탐구는 과목별로, 또 선생님에 따라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재수를 시작하며 처음 선택한 국사는 허홍구
선생님이었는데, 첫 수업부터 이런 콩트를 던졌다.

 "여러분, 국사를 열심히 하시면 안 됩니다. (잠시 쉬고) 재수를 하면서 국사를 열심히 하는 동안 여러분의 언수외는
병.신이 되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내년에 여기 또 오는 거예요(일동 쓰게 웃음)."

 그런 짧은 콩트 이후에 좀 더 실제적인 내용으로,

 "물론 국사를 준비하는 여러분들은 아무래도 서울대 생각을 하기 마련이겠죠? 특히 재수를 하면서 국사를 처음 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국사는 양이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도 국사 만점 받기는 어렵지 않아요. 그냥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버리면 되거든요. 하지만 말씀드렸듯… 그동안 여러분의 언수외는 병, 신, 이 되어가는 겁니다. 결국 국사 50점,
그리고 언수외는 200점. 내년에 대성학원을 또 옵니다.
 연고대까지라면 결국 언수외가 거의 모든 걸 좌우합니다. 작년 같은 경우에 언수외가 290 이상이면 사탐이랑 상관없이
원하는 데를 써서 갔고, 그 밑에 280 선에서는 사탐으로 많이 갈리는 편이었습니다. 결국 결론이 뭐냐? 언수외를 290
받으세요. 그게 남는 장사입니다."

 국사 공부 하지 말라는 국사 선생님은 처음 봤다.



 "작년에 대성 다니던 애들 중에 커플이 있었어. 근데 여자애가 막 엄청 달라붙는 그런 애였단 말이지. 그래서 열 시에
학원이 끝나면 애가 남자친구한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조르는 거야. 여자애 걔는 일산 사는데 남자애는 분당에 산다고.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그걸 또 왜 데려다 주는데? 일산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두신데? 그래서 저번에 남자애가
학원 왔기에 물어보니까 삼수한다 그러더라. 여자애는 어떻게 됐냐 그러니까 약대가서 헤어졌단다, 내 참. 그니까 여러분,
연애 하지 마세요."

 11반의 사회문화 과목을 담당하는 김종배 선생님은 대구 사투리가 섞인 억양에, 호통 섞인 목소리로 커플지옥설을
설파했다. 3월 둘째 주에 접어들어 개강 한 달 차가 되어 가는 우리 반은, 이제 선생님들의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적극 반응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허물어 진 상태였다.

 "그리고 남자 놈들! 화장실에서 거울은 왜 보는데? 주위를 둘러봐라, 얘들한테 잘 보이고 싶나? 차라리 잠 깨게 세수를
하란 말이야." 주위를 둘러보고 킬킬대는 남자들. 나는 제비뽑기로 새로 배정받은 자리 주변이 전부 남자라 서로를 보고
낄낄댔다. "넌 아마 안생길거야." 선생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책을 넘긴다. 사실 반 전체를 봤을 때도 남자가 훨씬 많았고,
남자들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예쁜 여자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재수 생활은 연애와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먼저 좋아해 줄 정도로 얼굴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를 이끌만한 화술이나 자신감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그냥 공부나 하는 게 속 편해."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문화 수업은 철저하게 수능과 평가원 문제로 구성되었다. 수업 방향은 학생들의 주요 오개념부터 바로 잡기.

 "아니, 내가 이해가 안되는 게 뭐냐면 사회문화 과목에 어째서 이렇게 허당 강사들이 많은 거냐고. 기초적인 것부터
오개념이 난무하니까 애들이 이상한 거 찍어서 틀리고 와가지곤 '이게 왜 틀렸어요?' 이러고. 그게 왜 맞냐고 물어보면 답이
아주 그냥 가관이야 다들. 사회문화를 어떻게 배운 거야? 이게 그렇게 쉬운 과목이 아니에요, 여러분. 개념을 확실하게 합시다."

 하지만 사회문화 두 시간 연강은 실로 힘들기 그지없었다.








 개강 후 조금 늦게 들어 온 친구들을 포함해서 마이맥대성학원의 동창생은 총 다섯 명이었다. 전부 남자, 1학년 때 모두 같은
반이었고, 중간에 자퇴한 한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이 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묘한 인연이었다. 그런 친구들끼리
재수학원 한 자리에서 모였으니 할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점심과 저녁은 학교 친구들과 먹었다. 대화는 으레
그렇듯 재수해서 성공한 선배들 이야기, 대학 간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함께 재수하는 친구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가끔 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거리를 되새기기도 했다.

 그럴수록 우리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재수생이라는 애매한 위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 안의 코끼리[*]와도 같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죄 지은 느낌을 받으며 겉으론 쓰게 웃으며 애써
괜찮다는 표현을 해야 했다. 일 년 정도 늦는 게 뭐 어때요, 하면서. 그러면 그들도 으레 '뭐 그렇지' 하면서 대충 얼버무리고
하는 식이었다. 같은 재수생들끼리라도 다를 건 없었다. 누구와도 편하게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하는 둥 마는 둥 겉도는 대화를 마치면 혼자가 된다. 자습시간. 오히려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는 건 혼자가 되는
시간이다. 책은, 자신이 가진 것 외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나와 책은 인사치레나 돌려 말하기 없이 솔직하게 대화했다. 그러면
마음이 놓이고 책과 하나가 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사람과의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겉도는 성격이라, 어울려 노는 대신 책을 많이 붙잡았다. 재수를 시작하면서도 그런 점 때문에 해 본 적 없는 진득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이 불편해질수록, 혼자 보내는 시간이 편해졌다.

 한참 미친 듯이 문제를 풀다 보면, 긴장이 늦춰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땐 달리기를 하다 멈춘 것처럼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온다. 집중, 몰입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감정들이 생각을 잠식한다. 모든 불안함과 슬픔, 외로움이 바이러스처럼
머릿속으로 퍼져 나간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이렇게 생각이 많아질 땐
고개를 들고 주위를 본다.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풀고 있다. 각자의 실력과 꿈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스스로를 다잡는다. 또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수리 풀이용 A4 노트를 벌써 반 가까이 채웠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의 공부 량이었다. 대부분의 수리 수업 교재를 진도보다
훨씬 앞서 풀고 있었고, 기출 문제를 비롯한 이런 저런 문제들도 구해다가 풀었다. 어림잡아 2주간 사오백 문제는 푼 것 같았다.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점수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슬슬 외국어도 문제 푸는 양을 늘렸다. 문제는 숙제로 풀어오고 수업 시간에는 해설하는 강의 형식이라 각 단원별로 딸려 있는
열 문제 정도를 전날까지 풀어 놓아야 했다. 중학교 때 다녔던 영어 학원이 생각났다. 그때는 숙제를 일일이 검사하고 해오지
않으면 엄청 맞았는데, 재수생이 된 지금에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매보다 스스로가 지는 책임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숙제를 하지 않아서 수업을 제대로 못 듣는 건 결국 내 책임이다. 다른 누구도 그런 걸 신경 써주지 않는다. 내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 내가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매의 아픔을 잊어 갈 무렵이 되어 내가 깨달은 한 가지였다.








 단과반이 개강했다. 나는 수강과목이 세 개나 되었다. 허홍구 선생님의 국사반, 국사를 처음 하기에 아무래도 빨리, 더 많이
해야 했다. 담임 박보경 선생님의 수학 10-가, 나는 모자란 공통수학을 보축하기 위해서 선택하고, 은선진 선생님의 고급 독해는
왠지 불안한 독해를 좀 끌어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세 수업 모두 강남대성 본원에서 이루어졌고, 강의실도 전부 같은 곳이었다.
단과반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로, 세 강좌를 들으니 생각보다 자습 시간이 많이 줄었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사는 정규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규 수업에서 진행하는 정치사보다 뒤 단원인 경제사부터 진도를 들어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강의실에는 열 명 조금 넘는 정도의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으니, 꽤 추운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강의
촬영 카메라를 봤다.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괜히 신기했다.

 은선진 선생님의 고급 독해 강좌는 반대로 강의실이 가득가득 찼다. 나는 몰랐는데 굉장히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았다.
이름을 보고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강의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체구가 큰 남자 선생님이었다. 강단 위에 서자마자 느끼한 목소리로
"반갑다 학생 여러분." 하며 프린트 뭉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자, 주목. 내 수업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따라오면 분명 여러분들은 영어의 신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프린트의
제목은 봤겠지? L.O.G. 즉 Level of God이다. 난 여러분들을 어중간한 상위권에서 수능 백점, 그리고 텝스까지도 커버할 수 있도록
할 것이야."

 이렇게 물 흐르듯 자뻑멘트를 던지는 선생님은 난생 처음 본 것 같다.

 "그럼 첫 번째로 고급 구문 해석을 해보자. 1번 문제, 한 문장짜리지만 굉장히 힘들 거야, 5초, 5초 준다. 시작."

 이게 뭔가 싶은 문장이었다. 그 뒤로도 죽 그런 식의 문장이 하나씩 나오고, 뒷장에는 수능 스타일의 문제가 이어졌는데 길이나
난이도는 수능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여기의 글과 문제들은 대부분 경찰대 시험이나 텝스를 비롯한 좋은 글에서 내가 직접 고른 거다. 절대 쉽지 않아. 1등급 맞는
애들도 버벅대는 게 여기 글들이야. 자 그럼 보자."



         



 금요일의 수학 10-가, 나 단과는 우리 반도 몇 명 있었다. 남자는 나와 광주에서 온 친구(윤군)와 반장 형 셋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단과 수업을 들으러 강남대성 본원까지 걸어가면서 자연스레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에 들어가면 조용히
문제를 풀고 설명을 들었다. 분명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그 공통수학이었지만, 역시 난이도가 꽤 높은 문제가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에서 막혔다. 윤군은 09년 수능에서 수리 100점을 맞을 정도로 실력이 있었지만, 자기 역시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채점할 때 보면 거의 다 맞는다. 반장 형은 수업을 좀 버겁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단과 수업을 같이 듣는 날은 강남대성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보통 해장국이나, 싼 값에 배불리 먹는 분식 위주로 먹고
다시 마이맥까지 슬슬 걸어가고 자습을 준비했다. 이런 생활 패턴은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을 줬다. 망중한이랄까, 하루하루를
지배하는 초조함을 사소한 즐거움으로 조금씩 밀어낸다. 점점 재수에 적응해나가는 자신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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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지만 금기시 되어 아무도 꺼내어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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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갑자기 HTML 체크가 없어졌는지-_- 차후 이미지 링크를 위해 태그는 남겨놓습니다.

※ 금지어 규정으로 인해 일부 단어가 수정되었습니다. 곱10는다는 표현도 못쓴다니 어이가 없어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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