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물결레이 [263575] · MS 2008 · 쪽지

2017-11-24 03:13:20
조회수 23,403

삼수를 실패한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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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도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2011 수능부터 2017수능까지 재수,삼수, 군(?)수, 무휴학 반수, 휴학 반수까지 스트레이트로 경험한 

지금은 평범하게 의대가아닌 의치한 재학중인 사람입니다.



이번 2018년 수능

정말 남일같지 않은 남일이 되어버렸네요

보통 21살, 22살이면, 수능이 남 이야기가 되곤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라면..

저는 나이 스물 여섯을 먹고서야, 드디어, 대한민국 수능이라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려, 이런 기분을 처음으로 오랜 수험생활 끝에 느껴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고, 지나간 수험생활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합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왜 학교, 학원 선생님들이, 그리고 입시 선배들이, 대학교 재학생들이 후배들에게


이런말을 하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비록 얻은 결과가, 승자와 패자가 냉혹하리만큼 구분되는 시험 속에서의 아주 보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라 할지라도

두 손 꼭 모으고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당신은 아주 소중한 존재라고..

무언가 이제는 내일이 아닌 수능을 치룬, 이 글을 읽은 18년도 수험생분들께 

오글거릴 수 있지만 (^^;) 아재의 마음을 담아 말씀 드려봅니다..





개중에서도 마음에 밟히는게

삼수생들이네요..

물론 수능 망친 현역들도, 재수생들도 힘들거에요

힘들죠. 친구들 수능 대박나서 대학가는데 자기는 재수해야하고, 

재수생들인 삼반수냐 삼수냐 이 더러운 운빨죶망 고인물 피지컬 게임을 떠나느냐 

고민이 많이 되실거라 생각되지만..



삼수생들, 특히 입시를 실패해버려서, 눈앞이 정말 캄캄한 수험생들의 마음은..

저도 겪어봤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깊이를 알수없는 절망감의 크기가 전해지는 듯합니다.




잠시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쌩삼수를 했는데, 수능을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언외탐 (오늘날로 따지면 국영탐)은 다 괜찮게 나왔는데

수학이 68점 4가 뜬거에요. 13수능때.

12수능때 수학 가형 88점으로 1컷에서 1점 모자란 2등급이었거든요. 94%


근데 정말 거짓말같이 13수능때 

지금도 기억나네요 주관식 수열문제어서 현타가 오더니

패닉상황에 처하게 되고.. 침착하게 풀 수 있을 문제들도 다 놓치면서 

4점짜리만 고스란히 8개를 틀려버리고... 4등급 68점을 맞아서..

정말 컴퓨터 앞에서..

새벽에.. 곡소리도 못내고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갑자기, 못난 아들, 재수, 삼수 비용 대주시느라 허리가 휘게 일하시고

늘 기도해주시던 그 모습이 떠오르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겠더군요..

'아들.. 괜찮아..?'

하시는데.. 저는 엄마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하고 꺽꺽 울던 제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나는 부모님께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

그깟 특목고 나와서 뭐가 유세라고

쌩 재수, 쌩 삼수, 권리인양 재수 비용을 요구하고

나같은 놈은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쓰레기고, 대학 갈 자격도 없고,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개같은 새X 인간 쓰레기 수학을.. 4등급 맞아버리는 분리수거도 안될 쓰레기





그당시 한없이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진 저를 지배했던 저런 생각들..

나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그 느낌을 가지고



저는 11월 수능이 끝난 지 3주만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군입대를 선택하고 

12월 11일 입대합니다. 2012년 추운 겨울..





육군에 입대하니, 특히 신교대 (저는 사단 신교대여서 훈련소라고 하지 않았어요 ㅋ)

시간은 정말 느리게 가더군요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나지만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제설작업이었어요. 끝도 없이 내리는 눈, 폭설,

훈련을 뒤로한 채 각자 싸리비와 제설도구를 가지고 눈을 치우는데

내 마음의 번뇌도 

하나, 둘, 새하얀 눈이 치워질 때마다 사그라지고 잠잠해지더군요

그리고 저는 모태신앙이라 교회를 평생 다녔는데, 삼수때까지는 그저 머리로만 믿던 신을

군대에서 잠잠히 묵상하는 가운데, 기드온 신약성경 (군대 교회에서 주는...조그마한) 을 

틈틈이 읽으면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 구세주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급 갑자기 경건해지네요..^^;)



여하튼.. 그렇게 신교대 생활을 마치고 간 자대

육군의 생활은 가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굳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지만..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욕을 듣느라 기절 직전까지 간 밤 12시의 그 사건,

사정없이 베레모로 머리를 쳐맞던 때

하루에 정확이 32번 지적을 받아 결산시간때 분대장에게 사정없이 털리던

정말 구데기취급을 받았던 일,이등병 시절을 겪었습니다.

각종 훈련, 행군, 군대가 주는 특유의 중압감, 압박감 

그럼에도 남은 군생활 d-500일대를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게 빠르지 않을까? 생각이 들던 그 시절



내 마음속에서는 강한 열망이 타오르더군요


난 죽을 수 없다


난 꺾이지 않는다


난... 난 수능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육군이었고, 주위에 공부하는 사람도 없고, 환경조차 좋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하루 평균 6시간을 수면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는 제가 (늦잠, 낮잠, 퍼질러 자기)

군대의 규칙적인 생활에 힘입어 평균 4~5시간 수면생활을 유지하며

밤잠을 줄여가며 연등을 하기 시작했고

12시에 취침에서, 새벽 2시~3시에 깨어 경계근무를 마친 다음 5시에 자서 6시 반에 일어나는

지금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드코어한 수면패턴을 유지하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것을 볼 수가 없었어요

기출, 그리고 ebs, 텍스트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고력은 증가했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명료해졌습니다.

잡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수능과 내가 대화하는게 느껴졌습니다.


생각이 한 곳으로 모아지니, 그곳에서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에 의지하며 군 생활 틈틈이 2년간 공부를 마치고


9월에 전역해서, 11월 수능을 봤는데,

5번의 수능 중 역대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와, 지금 다니는 대학 하나를 합격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이후에도 2번의 수능을 더 봤지만, 

이제는 겸허히 현실을 인정하고 이나마 이런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나를 허락해준


'수능'에게 감사작별을 고하며 길고 긴 7년간의 입시생활을 마무리했네요. 그게 작년이네요




제 이야기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 아픈 삼수생 여러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말 냉혹한 현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죠


생각지도 못한 레벨의 대학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헛되이 2년을 날려버린 병X이라는 (상상의)손가락질을 견뎌야 하는 현실


내가...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나는.. 쓰레기인가? 구제불능인가?

자기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전해지는 분노, 자괴감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우리들 앞에는 이제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포기할 용기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든

아니면,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이다, 내가 갈 곳은 전문직이기에 꼭 가야만 한다, 해서 도전하든

잠시 군입대를 통해 쉬어가든


우리 앞에는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서, 갈가리 찢겨져서, 숨도 겨우 쉬고 있는데

우리는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그런 너무나도 아픈 이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수를 무사히 끝내신 여러분..

비록 우리는 실패자, 무능력자,

입시에서 구원받지 못한, 나락으로 빠져 지옥의 외길을 걸어가는 죄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울지라도


희망을 가집시다.


끝끝내 스카이에 가지 못했더라도

끝끝내 의대, 아! 의사가 되지 못하였더라도..

끝끝내 염원한 그 무엇에 도달하지 못하였더라도


그 누군가는 우리가 가장 염원했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믿으며


우리는 이제 운명의 신에게 다시 한 번, 인생의 진지한 싸움을 위하여 

그리고 이번에야만큼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마음속 깊이 새겨진 나의 꿈

그것은 삼수 실패로, 그 예리하고 차가운 단도에 깊숙이 박혀 그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저주스럽고 축복된 생을 허락한 운명의 신과 다시한 번 마주하기 위해

아리비아 사막으로 떠나야하는 순례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무엇으로도 삼수실패를 위로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이 상처에 꽃피워질 자그마한 희망의 꽃을 위해 


오늘의 절망을 찢겨진 마음의 토양에 꾹꾹 눌러담아 심었으면 좋겠어요..




....





지금까지 쓴 글이 정말 초라하고 오글거리는 말로 가득 차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그 누군가 삼수를 실패한 수험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해 봅니다..


글을 쓴 제가 정말 힘들었기에, 세상에 혼자 있는것만 같아서 죽고 싶었기에


그냥 마냥 이렇게 난생 처음으로 관조자가 되어 본 수능을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정말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축복된 인생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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